베이스 연광철과 함께 한 슈베르트 겨울여행

 

오지희(음악학 박사, 음악평론가)

(2015년 3.4월 클래시컬)

 

음악회를 자주 다니다보면 이따금 이름만으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연주자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철저한 프로정신과 실력으로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다. 베이스 연광철이 그러했다. 연광철의 이름만으로, 그것도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전곡을 연주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1월 10일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은 흥분으로 술렁였다. 최소한 그 곳에 온 사람들은 단 한명도 타의에 의해 억지로 온 관객이 없어보였다. 

 

베이스 연광철은 사실 오페라가수로 더 유명하다.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탄호이저’로 연광철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후 종횡무진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고 있다. 그러한 연광철의 슈베르트 겨울나그네를 대전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겨울여행보다 설레이지 않을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 박은식의 차분한 반주로 시작된 첫 곡 ‘안녕히’에서부터 굵고 풍성한 울림은 홀 안에 가득 울려퍼졌다. 분위기가 어두우면서도 쓸쓸한 겨울나그네는 테너의 맑은 목소리도 좋지만, 베이스의 저음에서 울리는 깊은 소리와도 잘 어울렸다. 연광철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독일어 발음과 적확한 발성으로 중간 휴식시간 없이 겨울나그네 전곡을 노래했다. 기대했던 마음은 음악이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열광적인 느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깃발’에서 보여준 폭풍우가 흐르는듯한 격렬한 느낌, ‘얼어붙은 눈물’의 “눈물, 내 눈물이여”라고 읊조리며 낮은 음성이 나지막히 깔릴 때의 흐르는 그 전율! ‘얼어붙은 가슴’에서, 내 가슴이 풀어질 때는 그 모습도 녹아서 흘러가버린다는 시의 절박한 심정은 몰아치는 절절한 감성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회고’의 숨도 쉬지 않고 달리겠다는 시구에서는 나까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고, ‘도깨비 불’의 내 슬픔이 끝장이 난다라는 가사는 소리가 끊어질 듯 간신히 들렸다. 진중하면서도 격렬한 ‘환각의 태양’을 거쳐 마지막 곡 ‘길가의 악사’에서 연광철과 함께 한 겨울여행은 차분히 마무리되었다.  

 

독일 시인 뮐러의 낭만적인 시의 운율은 슈베르트 음악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연광철의 겨울나그네가 들려준 여유있는 선율의 흐름에는 충만함이 가득했고, 휘몰아치는 느낌은 더욱 강렬한 회오리바람으로 불었다. 겨울의 쓸쓸함 속에서도 봄바람이 부는 듯한 ‘봄의 꿈’에서는 헛된 희망이 꽃구름처럼 등장했다 사라진다. 피아니스트 박은식의 밝은 음색은 ‘봄의 꿈’에서 찬란히 빛났다. 연광철의 목소리는 감정적이기보다는 잘 조절된 음색으로 울려 퍼졌고 피아노는 때로 목소리보다 더 호소력을 지녔다. 슈베르트 가곡에서 피아노와 목소리는 일심동체다. 특이하게도 피아노음색은 감성적인 빛깔을 선보였고 이성적인 연광철의 목소리와 대조적인 감정의 조화를 이루었다. 

 

그날 관객들은 연광철, 박은식과 함께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겨울여행을 갔다 왔다. 우리 모두 겨울나그네가 되어 겨울여행의 스산함과 찬란함을 느끼기에 한 시간 반 남짓한 여행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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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전공연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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