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속삭임, 이경환(Lee Kyunghwan) 개인전
전시회 2024. 9. 19. 23:18 |
전시명 : 침묵의 속삭임, 이경환(Lee Kyunghwan) 개인전
유형 : 대전 사진전
날짜 : 2024년 10월 1일~10월 13일
관람시간 : 10:00~18:00, 전시마감일 : 10:00~15:00, 월요일 휴관
장소 : 갤러리 탄(TAN), 대전 서구 문정로148(탄방동, 굿앤월드 빌딩 502호)
문의처 : 갤러리 탄(TAN) 042)489-8025
기타 : 작가와의 대화 : 2024.10.3.(목요일) . PM 3:00
전시 서문
침묵의 속삭임
-2024 이경환 사진전에 부치어-
이정희(사진평론가)
그의 작업은 화려한 수식어도 수사도 없다. 담백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 직진하는가 싶다. 그의 이번 사진은 사진만이 가진 독보적인 특징인 리얼리티 방식을 선택했다. 디지털 가상 이미지 구성에 몰입했던 그동안의 전시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결과물인가 싶지만 이미 그에게는 원본 없는 가상의 디지털이 과연 사진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하다. 그 무용한 논의를 넘어 무엇을 어떻게 말하려는가에 따라 작가는 이미지를 위한 방식을 선택할 뿐이다.
1. 사진의 정면성
그의 작업은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의 독일 사진의 계열을 따른다. 한국에 여러 번 전시를 오픈하여 많은 사랑을 받은 회퍼의 사진은 기술적 완벽성과 진지한 개념 접근으로 작업을 진행한 건축공간 사진이다. 대부분 2미터가 넘는 사이즈의 작품으로 공간의 이미지가 품고 있는 다층의 시간성과 아름다운 색채미와 대형 사이즈에서 오는 숭고미는 관객들을 압도한다.
1980년대 이후 ‘타블로형식( Forme tableau)’의 대형 사이즈의 사진이 등장하면서 크기의 변화와 디테일의 확대로 인한 사진과 관객과의 시각체험은 예술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해주었다. 타블로형식은 새로운 기회를 가져왔다. 50여 년 전 타블로형식이 장 프랑수아 슈브리에(Jean Francois Chevrier)에 의해 명명된 이후 독일의 사진그룹인 안드레아 구르스키(Andreas Gursky),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토마스 루프(Thomas Ruff),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 등 베허부부(Bernd & Hilla Becher)의 제자들이 형성한 ‘뒤셀도르프 사진학파’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시도되었다.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 개념미술이나 행위미술의 매체적 사진과는 뚜렷이 획을 긋는 또 다른 의미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작가 이경환은 타블로 형식을 통해 사진이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그의 나무시리즈는 사진적 리얼리티에 충실하다. 그러나 사진적 기법은 충실한 리얼리티에 기초하지만 디테일한 시각적 리얼리즘은 관객들로 하여금 대상 그 자체-나무 그 자체를 정면으로 마주보게 한다. 일종의 물리적 현전이다. 리얼리티의 정면성은 관객들의 사유를 자극하고 자극된 심성은 또 하나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2. 리얼리티의 가능성
카메라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한다. 사진의 리얼리티 핵심은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은 동일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사진 고유의 광학적 속성인 디테일은 다른 예술매체와 구별되는 더없이 강력한 무기가 된다.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사진의 표현 영역이 무한대로 넓어진 만큼 극사실적인 선명한 이미지는 대상에 빠져들게 한다.
대부분 관객들은 대형의 사진 앞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다가 다시 가까이 다가가 나무들을 세심히 들여다본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조는 섬세한 내적 동요를 가져오면서 무심히 스쳐가기 쉬운 작은 것들에 다시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관객들은 나무가 전달하는 자연의 숭고함 이면에 접혀있는 아주 작은 주름들을 보게 될 것이다. 지난 8월의 텐보이스의 전시 ‘그 침묵의 소리’에서 미리 선보였던 이경환의 "나무" 앞에서 적지 않은 관객들이 오랫동안 서성였다. 관객과 나무와의 거리는 하나의 사유의 공간이 되었다.
이경환은 나무에 관련한 여러 정보를 찾고 분석하고 장소를 물색하면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며 촬영을 한다. 찍는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나무와 주변부의 사회적 역사적 얽힘을 분석하는 준비기간과 결과물을 내기까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결과물의 선택 과정이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나무의 현존 위에 작가가 가진 미적 심리를 담고자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의 나무 사진은 풍경사진이기보다 나무의 초상사진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3. 나무의 수사학
나무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인간이 깃든다. 나무는 인간이 사는 물리적 공간과 역사적 시간의 지층 위에 항상 함께 해왔다. 풀도 아니고 꽃도 아닌 것이 견고한 존재로서 인간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간다. 때문에 그가 찍은 거대한 나무의 존재감은 그 자체로 숭고미를 이룬다. 나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의 생을 보낸다. 비록 생의 주기야 다르지만 나무도 인간사와 같이 오랜 세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과정을 보낸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이경환에게 나무는 신성하고도 숭고한 존재다. 여러 해 동안 제주를 비롯한 역사적 장소에 서있는 보호수와 마음에 닿은 나무들을 촬영하면서 명멸하는 역사와 인간사를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가 재현한 나무들의 뒤엉킴은 선연하고 고통스럽다. 아무리 담담하게 작가가 대상과 거리를 둔다해도 작가의 심리적 심상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사진적 세부 묘사는 산다는 것의 사무치는 애틋함과 신산함을 보여준다. 간혹 꽃피는 시절도 있지만 그의 나무 대부분 오랜 세월 누적된 고통과 인내가 깃들어있다. 흑백의 사실적인 기법은 보이지 않는 핍진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이나 연민이기보다 고통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는 견고함이다. 그의 나무 이미지는 피할 수 없는 극단적인 단면들을 보여주면서도 나무가 가진 내적 본성을 드러낸다. 인간이 생로병사를 겪듯이 나무도 그러하다. 인간의 욕망만큼이나 나무도 그러하다.
작가가 찍은 ‘봄의 나무’가 있다. 겨우내 얼었던 흙이 부드러워지는 만큼 나무의 뿌리도 봄기운이 스며든 흙과 만나면서 새로운 한 주기를 맞이한다. 뿌리가 나무의 존재의 근거이며 사방의 것들과 얽혀드는 역동적인 통로라면 꽃은 그 영광을 활짝 드러내는 황홀의 순간이다. 그렇게 환하게 피어나는 생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땅 깊은 생명의 힘이 하늘의 태양 에너지를 받아들여 어린 초록 잎들을 만들어내고 수천 송이 작은 꽃으로 세계를 혼미시키는 봄날이라면! 한순간 소리 없이 살다 간들 전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4. 마무리하며
나무가 있는 숲에 가보라. 그곳에서 나무에 기대어 보라. 나뭇잎끼리 비벼내는 소리에 바람과 새와 온갖 미물들이 스며들 것이다. 작가 이경환에게도 나무시리즈를 찍는 기간은 나무와 깊이 교감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나무를 찍고 그 곁을 맴돌다가 잠이 들고 다시 아침을 맞이하며 새로운 비상을 꿈꾸었을 터이다.
무엇보다 이경환의 나무시리즈는 문학 텍스트와 함께 있다. 문학적 상상력은 이미지작업에 큰 힘이 된다. 우찬제의 "나무의 수사학"과 이승우의 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은 그의 사진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의 이미지 중에 나무와 덩굴이 서로에게 스며들고 엉켜붙어 하늘 끝까지 올라간 나무덩굴이 있다. 작가 이경환의 할 말이 거기 있는가 싶다. 홀로이면서 서로인 생의 모순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말하는 것 아니었을까.
[작품 설명]
침묵의 속삭임1, 160x240cm, Pigment Print, 2024
침묵의 속삭임2, 160x240cm, Pigment Print, 2024
침묵의 속삭임3, 100x150cm, Pigment Print, 2024
침묵의 속삭임4, 100x150cm, Pigment Print, 2024
작가노트
수년 동안 전국의 큰 나무를 찾아 찍고있다. 오래된 큰 나무는 인간들보다 훨씬 오랜 기간 비바람과 더위, 추위를 견디며 병충해, 물리적 훼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살아온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삶의 터가 한번 정해지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고수하는 운명이어서 나무는 바로 그 현장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환경적 변화의 기록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틈만 있는 곳이면 뻗어가는 나무의 뿌리에는 생명에의 충만한 욕망이 뚜렷하다. 가지에 피어나는 꽃들과 열매들은 성실한 뿌리와 밑동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다. 묵묵히 대를 이으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오래된 나무들은 이 땅의 백성들이 겪어온 수많은 아픔을 함께하였고, 쉼터가 되어주었고, 비루한 이들의 소원을 전하는 신령한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늙어가는 오래된 나무의 모습은 언제나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나무를 찍을 때마다 하늘의 계시를 전하려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인가 싶다.
침묵의 속삭임5, 100x150cm, Pigment Print, 2024
침묵의 속삭임6, 100x150cm, Pigment Print, 2024
침묵의 속삭임7, 80x120cm, Pigment Print, 2024
침묵의 속삭임8, 80x120cm, Pigment Print, 2024
침묵의 속삭임9, 80x120cm, Pigment Print, 2024
침묵의 속삭임10, 80x120cm, Pigment Print, 2024
작가약력
이경환 Lee Kyunghwan
개인전
2020.05 : Frieze of Life. 대전, 모리스갤러리
2024.10 : 침묵의 속삭임. 대전, 갤러리탄
그룹전
2019.05 : Human & Nature. 대전, 예술가의집
2020.07 : 사진, 그 기억의 영원한 봉인. 대전, 예술가의집
2020.10 : 천사여 고향을 보라. 대전, 대전갤러리
2021.05 : 끝과 시작. 대전, 예술가의집
2021.10 : 사랑과 죽음에 관한 서사 16. 대전, 대청문화전시관
2022.09 : 부산국제사진제 자유전. 부산, F1963 석천홀
2022.11 : Ten Voices. 대전, 갤러리탄
2023.06 : 코끼리의 방. 대전, 갤러리탄
2023.06 : 코끼리의 방. 청주, 예술곳간
2024.08 : 그 침묵의 소리. 대전, 갤러리탄
2024.08 : 완벽한 날들. 대전, 솔갤러리
2024.11 : 그 침묵의 소리. 전주, 아트갤러리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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