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철 개인전 '사색의 여정', 갤러리M
전시회 2019. 10. 21. 23:46 |
전시명 : 강구철 개인전 '사색의 여정'
유형 : 대전전시
날짜 : 2019년 11월 13일~11월 19일
관람시간 : 9:00~18:00, 전시마감일 : 09:00~14:00
장소 : 갤러리M(대전MBC 1층)
문의처 : 042-330-3920
강구철 - 사색 150x210cm 한지에 수묵
강구철 - 사색 150x210cm 장지에 채색
무위(無爲)의 미학으로서의 강구철의 예술
미술평론가 유현주
<회상>의 미적 공간에서 모색된 동양정신
90년대 무렵부터 강구철의 작품은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현대수묵화의 길을 걸어왔다. 전통과 현대를 새롭게 조화시키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언어를 창안하고자 한 작가의 치열한 고뇌는 시대의 변화가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20세기 후반, 시대적으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구소련의 개혁정치와 시장개방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막을 내리게 하면서 점차 우리 사회에 불어온 신자유주의 물결과 더불어 인터넷과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총체적인 기술사회로의 이동은 예술가들에게 시대에 대응하는 예술 방법론을 탐구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전통적인 수묵화를 공부한 작가에게 기존의 매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디지털화된 현대사회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로서 강구철은 재료와 기법 즉 전통 수묵화를 넘어서는 한국화의 현대화란 화두를 대만 유학시절부터 끌어안고 있었다. 전통적인 수묵화에 담긴 동양적인 것의 정신을 버리지 않으면서 표현방식에서는 현대성을 담지하는 형식을 모색하는 과정은 긴 호흡이 필요했다. 중국의 문화권에 있는 동아시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강구철 역시 불교와 도교의 노장사상에 매료되었던 과정들을 경유하면서 본인만의 고유한 벽화 형식의 그림을 발명해내게 된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동서문명의 교차로를 만든 실크로드의 관문인 중국 간쑤성의 돈황석굴의 방문이라고 할 수 있다. 4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석굴에 그려진 엄청난 양의 조각과 탱화들에서 그가 느꼈을 숭엄한 감정들은 위대한 동아시아의 정신성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열망을 낳았으리라.
90년대 벽화 양식으로 선보였던 강구철의 작업들은 바로 돈황의 영향을 드러낸다. <회상>시리즈는 약 30센티미터 크기의 작은 화면 조각들에 토분과 혼합재료를 섞고 그 위에 오방색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색채를 올린 벽화 그림이다. 작은 화면에 그려진 것은 현대 추상화처럼 인간과 사물의 형상이 모호한 이미지들과 풍경들로 개인의 서사를 펼치고 있다. 어떤 것은 불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인간의 형상인 듯 사막의 풍경인 듯하면서, 토분 자체의 마띠에르가 묻어나는 화면들에서 벽화의 거친 느낌이 생경하게 전달된다. 붉고 푸른 화면 사이로 아무 색도 칠하지 않은 캔버스가 칸칸이 박힌 이 현대적 벽화는 비선형적으로 툭툭 올라오는 단편적 기억의 이미지처럼 말 그대로 총체적인 이미지가 완성되지 않는 기억의 편린들을 조각으로 새긴 것처럼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 벽화그림에서 우리는 백남준의 작은 모니터들을 연상할 수 있는데, 현대 디지털 미디어들의 뜻 모를 이미지들처럼 강구철의 벽화는 어떤 이야기도 구체화하지 않는 가운데 사색의 공간을 만들어준다. 이야기와 여백의 교차, 텅 빈 공간과 채색된 화면, 그림의 공간 사이에서 오히려 그림이 아닌 어떤 비인위적인 자연의 재료 즉 흙인 채로 남고자 하는 긴장이 우리의 시선을 화면 속으로 묘하게 끌어들인다. 색면과 무색, 있음과 비어있음, 즉 존재의 있음과 그 있음의 부재를 상징하는 색과 공의 사유가 분할된 화면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구철의 작품 세계에 드러나는 또 다른 동양 정신은 다음에 이어지는 <사색>에서도 짙게 드리워진다.
<사색>에서의 무위(無爲)와 물화(物化)의 세계
2000년대 들어와 강구철의 일련의 작업들은 <사색>이라는 제목으로 한층 시적인 정취를 풍긴다. 특히 나비, 물고기, 장수하늘소, 메뚜기, 잠자리, 풀 등의 이미지들이 그림의 전면에 등장하거나 화면 전체의 주요한 구성요소로 배치된다. 이렇게 자연물을 중심으로 한 작업은 언뜻 화조화(花鳥畵)의 전통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강구철의 <사색>의 자연물들은 전통적인 화조화의 리얼리즘적 묘사와는 거리가 있다. 지점토를 쌓은 배경 위에 그려졌다기보다 조각된 그 이미지들은 사실주의적 화법이라기보다 다소 투박하고 추상적이며 어떤 면에서 문인화의 사의적 감성마저 비쳐지는 시적인 그림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중국화의 특징 중 하나인 ‘자연물을 통해 뜻을 부치는 우의(寓意)적이고 정을 펴내는 서정(抒情)의 기법’과 같은 것인가 물을 수 있다. 예컨대 그것은 모란이나 봉황이 의미하는 부귀, 소나무와 대나무 등이 대표하는 그윽한 정취를 말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상징을 추구한다기보다 차라리 그가 사는 장소 주변에 가까이 있는 친근한 자연물들을 작품 안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써, 말 그대로 사색(思索) 즉 ‘생각을 찾아’ 더듬는 시간을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사색의 시간 속에서 과연 작가는 무엇을 퍼 올렸을까? 찌든 일상의 상념을 털어내고, 허공을 날아가는 한가로운 나비의 날갯짓을 보며 혹은 물고기가 연꽃을 희롱하며 유유히 노니는 작가 자신만의 뜰에서, 지점토를 올리고 색을 칠한 후 뜸을 들였다가 다시 그 위에 지점토를 덧바르거나 드로잉을 하는 시간의 여정 속에서 그가 사색하고자 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여백이 많은 공간에서 둥둥 떠오르는 자연물들은 어떤 인위적인 강요된 삶을 거부하는 무위(無爲)의 몸짓을 연상시킨다. 사회로부터 요구되는 일정한 기준들에 맞춰 살고 있는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삶의 패턴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던 ‘자유’나 ‘무위’의 이념들은 이처럼 예술을 통해 상기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인지 우리는 강구철의 ‘나비’ 그림을 단순히 작가의 유미주의적 취향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장자의 ‘나비의 꿈(胡蝶夢)’으로 보게 된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편에서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이야기는 유명하다. 꿈에서 깬 후 자신이 나비가 된 장자였는지 장자가 된 나비였는지 구별하기 어렵지만 구별이 있음을 말하는 이야기의 말미에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사물의 변화(物化)라 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강구철의 작업에서 나는 이 물화의 모티브를 보고자 한다. 장자가 나비가 될 수 있고 나비가 장자가 될 수 있음은 물화의 사유 즉 자아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넘어 내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내가 될 수 있는 정신, 즉 망아(忘我)의 정신, 자기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남이 강구철이 그린 자연물들에서 오는 자유로운 정신이다. 이처럼 ‘무위’나 ‘물화’의 이념들이 강구철의 작업 재료와 테크닉 속에서 녹아들고 있기에 동양적인 정신 혹은 기운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 진행형 한국화의 세계화를 생각하며
강구철의 작업은 현재도 부단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장지에 안료를 듬뿍 적신 빗자루로 화면 전체를 긁기도 하고 그 위에 작은 사물들, 예컨대 방아깨비와 같은 풀벌레, 꽃 등이 이유 없이 얹혀있다. 여전히 한국화의 재료를 고수하는 편이지만 방식은 빗자루를 붓 대신 사용함으로써, 마치 물감을 떨어뜨리면서 그림을 완성했던 액션페인팅을 방불케 하는 행위적 그림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액션과 달리, 강구철 특유의 절제된 미학으로 그 표현은 군더더기가 없고 거칠지가 않다. 색채는 오방색을 크게 넘어서지 않으며 화면은 늘 여백의 공간을 주인으로 내세운다. 이 또한 그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한국화의 정체성 즉 동양정신의 맥을 잇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강구철의 예술 세계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절제와 균형으로 화면을 구성하면서 동양 특유의 정신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이고 세계적인 보편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한국화 화가로서 어쩌면 새로운 또 다른 모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가 진행하는 작업 속에서도 무위적인 사유의 방식은 한국화로서의 혹은 동양정신을 가진 한국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어찌 보면 디지털 시대와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강구철의 무위적 표현들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유희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강구철이 공들여 시간을 보낸 사색의 나날 속에서 만든 것, 바로 인위적인 것의 배제와 일부러 무엇인가를 행하지 않음으로써 행하는 이 무위의 미학을 앞으로 어떻게 이어갈지 애정 어린 마음으로 지켜보고자 한다.
강구철 - 사색 227x162cm 혼합재료
강구철 - 사색 259x162cm 혼합재료
[작가소개, 프로필]
강구철 Kang, Koo-Cheul
중국문화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17회
2008 북경올림픽 기념전
영남 호남 그리고 충청전 (대전시립미술관)
현대 한국화 확산과 집적(부산 문화회관)
한국의 예술전(파키스탄)
현_한남대학교 조형예술학부 회화과 교수
강구철 - 사색 259x181cm 혼합재료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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