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철 개인展, 이공갤러리
전시회 2018. 8. 16. 23:09 |전시명 : 정의철 개인展
장르 : 대전전시
날짜 : 2018년 9월 6일~9월 12일
장소 : 이공갤러리
관람시간 : 10:30~19:00
관람료 : 무료
문의처 : 042)242-2020
정의철 - 낯설다_47,53X45,Acrylic,2018
정의철 - 낯설다_50,53X45,Acrylic,2018
정의철 - 낯설다_51,53X45,Acrylic,2018
정의철 - 낯설다_28,116X91,Acrylic,2017
정의철 - 낯설다_18,116X91,Acrylic,2018
정의철 - 낯설다_48,116X91,Acrylic,2018
정의철 - 낯설다_43,90X72,Acrylic,2018
정의철 - 낯설다_57,90X72,Acrylic,2018
해체와 파괴, 그 속에서 답을 찾는 탈구조주의 시대의 몸
전하현 (미술사가, London Retired poet’ Institute)
미술을 어디서 시작하는가, 조형 이미지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작가가 어디서 조형언어를 찾는가는 미술이 작품화 되는 과정의 기본적인 첫 관문이자 출발이다. 또 감상하는 관객도 ‘무엇을 그린 것이지?’ 혹은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지?’ 란 질문을 던지며 작품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의외로 이 질문 앞에서 작가들은 자신있게 답변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관객 또한 도대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그 의미를 찾다가 오리무중에 빠지곤 한다. 미니멀리즘 이후 많은 작가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느끼고 싶은 대로 보라.’하며 그 대답조차 귀찮아 ‘무제’란 제목을 달고 있다.
미니멀리즘시대 이후 널리 파급된 ‘무제(Untitle)’는 그 제목 자체가 그들의 미학적 선언과 기존 미술에 항거한 철학적 이슈를 담고 있었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강한 조형의지를 생성하고, 보는 이들에게 작품에 적극적 참여를 권장하기 위해 '무제'를 제목으로 사용했다. 즉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뭔지 몰라서 회피성 탈출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관객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고 참여시키기 위한 시도였다.
작가는 조형언어를 찾아 그것을 표현하고 형상화하는 가운데, 자신 만의 조형의식이 형성된다. 그것이 결국은 작가의 예술철학이나 고유의 미학으로 의식화 혹은 자연스럽게 무의식화 되는 것이다. 미술이 종교적, 정치적, 일부 특별한 계층의 자의식확장이나 권위적 도구성으로부터 벗어나 자율적 예술성을 갖기 시작한 19세기 초부터는 더욱 심화된 인간화와 사회화 특성을 갖게 되었다. 더욱 모더니즘을 거치며 미술은 독자적인 영역으로 온전한 개념을 갖게 된 하나의 정신세계를 담은 콘텐츠로 성장하게된다. 미술이 갖는 감정이입과 교감적 기능은 개인의 자아의식 발전과 한 인간이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개성화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포스트모던 시기에는 미술은 사회와 개인, 타 장르와 적극적인 만남과 충돌을 시도하며 모든 분야에 개입하며 관련을 맺고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 이 연결고리는 결국 미술작품 안에 수많은 만남의 현장이 있다는 것을 자각시키고, 60년대 말 후기구조주의시대로 이행되며 철학적 콘텐츠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즉 자연, 사회, 시간, 공간, 인간과의 만남과 충돌이 미술작품 안에 녹아있어, 미술작품 분석을 통하여 서로 다른 구조와 공간, 시간의 상황을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내면, 자의식 혹은 자아와의 만남과 충돌이 미술 안에 있다는 사실의 자각이었다. 이같은 까닭에 하이데거는 고흐의 구두 속에서 ‘존재’란 화두를 끄집어내고 메를로 퐁티는 세잔의 사과와 풍경을 ‘몸’으로 보고 새로운 인식방법을 제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들뢰즈는 프란시스 베이컨 미술의 ‘해체된 몸’에 주목하고 라깡은 벨라스케스의 시녀 속에서 ‘재현’이란 조형언어를 끄집어내 인간의 자아인식방법에 대한 과정을 풀어 놓고 있다. 푸코, 지젝 등등 수많은 현대철학가들이 있지만 이 장에선 생략하기로 한다.
이같은 세계적인 흐름과 달리 한국의 대다수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 사물, 사회와의 만남과 충돌에서 나온 조형언어를 끄집어내지 못하고 이제까지 보았던 기존 작품유형을 답습하고 있다. 혹은 그 형상들 속에서 자신의 조형의식을 건져내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 백자가 한국미를 대표한다는 관념에서 이것을 조형화하는 작업 같은 사례다. 예를들어 김환기, 도상봉등 작가들에게 자주 주제가 된 백자가 달항아리로 이어지며 수 많은 젊은 작가들이 답습하고 있는 현상이다. 이같이 자신이나 삶, 인간과 사회가 아닌 이미 형성된 미술 속에서 미술을 찾는 관념적 조형화작업은, 서구의 많은 작가들이 자신 혹은 대상과의 대면과 사회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부딪침에서 만들어지는 조형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관념 속에서 찾아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고 한번 찾은 조형언어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많은데 반해, 후자의 접근법은 일상사와 내면의 충돌, 외부적 사건으로 언제나 조형이미지가 변환되어 나타난다. 매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이것을 조형화하기 때문에 그 이미지는 살아있고 항상 변화할 수 밖에 없다. 당연 전자는 살아있는 조형의식이 아니라 관념적 조형의식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미술작품이 출발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서 그 자체보다, 작가들이 경력이나 학력, 기타 주변부의 이야기로 관념적인 이야기로 장식할 수 밖에 없는 반면, 후자는 작가 자신의 사적 예술행위를 사회적 행위로 쉽게 공인받을 수 있다. 조형언어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나 정서 혹은 사회적 이슈를 담고 있어 공동체적 감정이입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구체적인 사례로 박서보 유영국 이강소 등 국내 많은 작가들이 하나의 방법론과 유사한 조형이미지로 색깔과 형태를 적당히 바꾸며, 평생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이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정의철 작가가 보여주는 조형이미지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자신과 직접적인 만남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치는 충돌과 만남을 조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그가 추구하는 ‘나’는 이상적인 자아나 포장하고 싶은 것, 꾸며진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불안정하고 훼손된 자신이 처해 있는 신체의 위치가 주는, 불확실한 미래와 거북살스런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작가는 스스로의 몸을 직시하며 조형언어를 출발시킨다.
나를 찾아 떠난 길 속에서 찾은 조형의식의 출발
모든 예술 작품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인간을 둘러싼 주변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모색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인류가 집단을 이루고, 인류문화의 역사와 함께, 각 집단 신화를 구성한 원리에서부터 시작된 모든 예술의 원론이다. 문학과 음악, 무용과 미술, 영화와 그 밖에 예술작업도 이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상하게도 근대 한국 미술과 문학은 이것을 배제한 ‘순수’라는 이름으로 본질적인 질문을 우회하고 회피하는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착각했다.
일반 작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지 않고 우회적 혹은 자신에게 돌려, ‘나는 누구인가?’란 화두를 품고 그것을 주변의 만나는 대상 속에서 찾는다. 라깡이 말한 바와 같이 ‘자아라는 것은 타인이란 거울 속에서 그 비춰진 모습을 찾는 것’이 가장 쉽고 보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즉 작가는 대상과 타인, 주변을 보며 자신을 대입하고 감정이입을 한 후에 그곳서 만난 느낌이나 감정, 상상의 결과를 조형화하는 것이다. 또 관객은 이러한 과정을 엿보고 작가가 만든 작품 속에 자신을 다시 비추어 보고 감정이입을 한다.
정의철작가는 자신의 불안정한 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하는 과정 속에서 조형 이미지를 찾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막연한 질문을 구체화하여 세상을 상징하는 원과 자신의 손바닥을 찍은 이미지로 나란히 병렬시키며 그 위에 다시 선으로 묘사한다. (그림 1) 여기서 좌우로 정확한 구획된 선은 이미 주어진 벗어날 수없는 구조를 의미하는 듯 보이고, 구부러진 사선은 그 정형적 규율로 갖추어진 형상 속에서 일탈하고 싶어하는 그러나 어쩔수 없는 억압에 몸을 비틀고 있는 작가의 조형의지 출발을 마치 예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 읽기는 청바지 위에 그린 이미지에서 충분한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림 2) 작가는 우주란 제목을 일상 속에 늘 편하게 입는 청바지에 표현한다. 바지 속에서 마치 성난 성기로 돌출된 욕망과 곳곳이 감추어진 상징들은,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 가 그 원형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이 두 작품에서 작가가 현 구조의 불합리성을 몸으로 느끼고, 탈구조 이미지를 찾고 있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또 놀라운 것은 라깡이나 들뢰즈가 중요화두로 제시한 원초적 욕망의 시작으로 하여 개인적인 일상이 우주로 확산되는 것을 이 작품에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작가는 지극히 사적인 이미지에서 집단이미지로 옮겨간다. 개인적 아이덴티티는 오직 그 사회 속, 혹은 집단 정체성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정의철작가가 한국이란 집단정체성과 태극기와 붉은 악마티셔츠(그림4,5)에서 조형의지를 찾아 실험한 것도 이같은 까닭이다.
그러나 이같은 작업의 과정은 스스로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고, 그의 개인적 해체 작업을위해 들어서는 필연적인 질문이었다. 해체는 견고한 자아세계로 나아가는 길이고, 예술가에겐 온전한 자신만의 조형언어와 작품세계를 만들어 가는 필연적 과정일 수밖에 없다. 작가가 몇 번의 변신과정을 겪으며 다른 조형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은 스스로를 해체하고 또 다른 자아를 획득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까닭이다.
낯설게 하기
정의철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낯설음들, 작가가 처해 있던 오늘의 한국이란 시대적 상황, 사람에 대한 어색하고 혼란스러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몸이 주는 당혹감 등 수많은 것들을 몸 밖에 대치시키고 그것을 낯설게 한다. 본드 혹은 우드락으로 형상을 드로잉하고 그 위에 에나멜 페인트를 부어, 그것을 굳힌다. 자신이 스스로 낯설게 한 껍데기들의 이미지 한 겹을 일단 만든 후, 그 위에 다시 테라핀을 부어 물감들을 마치 주름처럼 쭈글거리게 한다. 다시 작가는 재 낯설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치 생채기에 상처를 더 내듯 사포질을 하여 이미지의 표현을 극대화 한다.
작가는 시베리아와 중앙 아시아를 잇는 러시아 한 복판, 바이칼호 근처의 이르쿠츠크 유학시절 경험한 낯섦과 이질적인 만남과 충돌의 경험을 형상화 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 정체성을 찾는 모색이 자신에 대한 해체과정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조형언어로 이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06년 전 후엔 모더니즘시대 많은 작가들이 기웃거렸던 화석과 가면 등에서찾으려 시도한다.(그림5,6,7) 이 작업 과정에서 얼굴 안에 마치 지문과 같은 기호를 코드화하는 이미지로, 근원을 찾아 나선 절실함을 드러내고 있다.
당시 작가가 캔버스위에 에나멜 페인트로 가죽처럼 효과를 낸 작업은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에 더 접근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한다. 진짜 가죽이 아닌 에나멜 페인트로 그 효과를 낸 것은 작가에게 물감이란 것은 결국은 마지막 조형의지를 드러내는 표현수단이기 때문이다. 가죽이란 질료가 가진 내성과 생명의 흔적이 배태된 껍데기란 속성에 주목한 것이다.
결국은 그 가면은 본 얼굴을 감추는 도구이자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생성된 얼굴이기도 하다. 가죽은 본질을 덮고 있는 표피와 마지막 상흔이 남은 잔재이자 흔적으로, 그가 가면과표피를 조형언어로 선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오직 그것을 통하여 내면의 세계로 접근할 수 있고, 또한 접근해 만난 내면의 세계는, 결국 표피 일 수밖에 없는 이미지란 표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작품이란 것이 예술 혼이 배인 거죽이자 표피인 것이다.
20세기에 이루어진 2개의 해체과정 이후, 개인에게 요구된 필연적 해체
집단 정체성의 모색에서 벗어나 직접적인 자신을 찾는 과정으로 조형의지를 드러낸 정의철작가는 2011년부터 불안정한 결핍된 자신을 대면 하게 된다. 한쪽 눈을 실명하고, 나머지 한눈도 시력을 잃어가는 상황 속에서 이미 모든 것이 상실되고 해체되어가는 것을 피할 수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대변하는 자신의 얼굴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체된 사회를 드러낸다.
그의 이러한 작업에 주목을 해야 하는 것이 얼굴 속에서 끄집어 낸 조형의지와 이미지로 탈구조주의 시대의 불안한 정서와 불확실한 미래,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은 참혹한 현실의그것들이 파편처럼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조형이미지를 사냥하고 포획하는 과정이 흥미를 끄는 것은, 그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시대작가들이 모두 한번씩 거치는 대상의해체로, 자신을 사정없이 난도질 하며 파편으로 분해한 후 그것을 다시 엮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잔 이후 기존의 개념적 대상을 해체하고, 그 이미지로 분해한 후, 다시 작가의 온전한 조형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은 사실상 작가의 기본적 자세가 되고 말았다.
정의철 작가의 개인적인 해체작업은 우연히도 20세기 서구 사회가 힘들게 그 과정을 거친세번의 해체 작업 이후 필연적 통과의례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20세기 들어서 인류는 2개의 문화사적 해체과정후, 개인에게 요구된 해체에 직면하게 된다. 모더니즘 이후 첫번째 해체가 구조주의사회와 인식을 배태하고, 두번째 해체가 다시 그 구조주의마저 붕괴시키고 탈구조주의를 하려는 시도라는 것은 중요한 사건이다.
첫번째는 일원론적 사회구조를 조형의식으로 해체한 1907년 세잔의 회고전, 두번째 기회는 1968년 파리 학생운동으로 유럽사회와 미국으로 파급된 사회 내부적 기존질서와 중심구조의 해체다. 전자가 세기적 전환기에 모더니즘을 출발하게 한 당시 서구사회의 외부적구조 해체이었다면 포스트모던시대를 종식시킨 1968년의 파리혁명은 내부적 질서와 구조의 절실한 해체적 당위성에서 요청된 것이었다.
전자는 세계가 여러 문화와 종교구조 속에서 각기 다르게 형성되어 진행해 온 것을 깨닫게해, 구조주의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후자는 다시 이 구조주의의 한계를 경험하고 막다른 길에갇혀, 이에 벗어나려는 시도로 탈구조를 시도한다. 파리의 거리로 뛰쳐나온 지식인과 학생, 노동자들은 모든 것을 부정하고 뒤엎으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시대적 요청을 논리적, 철학적, 미학적으로 접근한 들뢰즈와 라깡, 푸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탈구조주의적 철학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새로운 철학 시대를 부추겼던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나 68년의 파리혁명 지식인 그룹보다 먼저 이러한 변화를 들여다본 몇몇 독일 예술가들이 있었다.
사회의 모호성과 불안정을 마치 변색된 사진처럼 각인된 인식에 도전한 게르하르트 리히터, 특히 바젤리쯔는 1961년 그 시대를 ‘아수라장판’ 또는 ‘혼돈Pandemonium’으로 보고 모든 것의 파괴를 선언하며 이렇게 절규한다. ‘나는 파괴하기 위해 태어났다. 질서를 파괴하고 풍경을 파괴하고 사람을 파괴하며 사회를 파괴한다.’ 그러나 그는 대안을 갖고 있기엔 너무나 젊은 나이여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파괴를 하려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소위 ‘질서’라는 것에 대해 질렸기 때문이다.’
PANDEMONIUM MANIFESTOS – GEORG BASELITZ(1961-2)
이후 탈구조주의 시대를 극복하려는 미술사조들이 우후죽순 등장한다. 미니멀리즘과 아르테포베라, 헤프닝과 프락서스, 일본의 모노파 등이 나타났다. 이들 사조가 소극적 방법과 대안으로 기존 미의식에 반기를 들었다면, 바젤리쯔와 안젤롬 키퍼등 신표현주의작가들은 적극적으로 대항하며 등장했다. 그들은 강한 조형의식을 무기로 가지고 나타나 주목을 끌었다. 기존 역사와 영웅중심의 사회에 대한 허구성에 절망한 바젤리쯔는 절규한다. 그는 마침내 파리혁명 전 후에 마치 세상을 뒤집고 싶은 강한 저항의식으로 거꾸로 한 그림들을 발표하고, 안젤롬 키퍼는 자국의 역사적 인식에 깊이 접근한 작업들을 내 놓았다.
그러나 안젤롬 키퍼의 역사에 대한 절규적 조형언어나 탈구조주의자들의 마지막 해체는 결국 대책없는 구조의 해체였을 뿐이다. 들뢰즈도 플라톤주의자들이 구축해 거의 수 천년을 이어 온 전통이 붕괴되는 시대를 예고하고, 한 개의 큰 산 대신 개인이 수많은 산을 만드는사회로 천 개의 고지를 제시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무엇으로 가야할 지 구체적 대안을 찾지못했다. 다만 메를로 퐁티에 이어 라깡과 함께 그 대안이 몸이 아닐까 어렴풋이 인식하고 몸에 주목을 했던 것이다.
세번째는 1989년의 베를린 붕괴로 시작된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해체다. 이렇게 세 번째 해체된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그것으로부터 길들여진 몸구조의 해체일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개인을 해체하고 그리고 ‘해체한 다음에 대안은 무엇인가’다. 아마도 구조주의시대의 모든 문제를 지적하고 시대를 정확하게 들여다 본 들뢰즈가 만약 이 대안을스스로 찾아내었다면 그는 결코 그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전통사회와 현대사의 해체과정 속에서, 또 다른 분열된 개성화과정으로
해체는 단지 20세기의 시대적인 요청이나 예술가들이 새로운 변신과 조형언어를 위해 겪어야 하는 과정만은 아니다. 온전한 한 인간으로 성장을 하기 위해서도 보통 사람들도 몇 번의 해체와 붕괴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사람들은 대부분 망각하고 있다. 칼 융은 이 과정을 한 사람이 성장하며 독립된 인격체로 분화되는 과정, 개성화과정이라 말한다. 헤르만 헤세는 융의 저서를 읽고 저자를 찾아가 그를 만나고 돌아 온 후, 융과의 대담과정에서 얻어낸 개성화과정을 데미안 속에서 아프락사스의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으로 풀어놓고 있다. 아동기의 싱클레어에게 소년기로 넘겨 준 것이 데미안 이었듯이, 피카소와 브라크를 전형적 기법 속에서 그것을 버리고 해체하게 한 것이 세잔인 것처럼, 예술이란 결국 삶을 통한 여정의 진솔한 기록일 수 밖에 없다.
대부분 고대신화 영웅이야기가 몇 개의 아프락사스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으로 진행되는 것도 보통 사람들이 아동기에서 청소년기, 청소년기에서 성인으로 최소한 3개의 해체과정을통과의례로 거쳐야만 하기에 구성되어 전승 된 것이다. 이것은 예술콘텐츠를 불멸로 만드는이야기 속의 본질이자 원형이기도 하다. 대중 혹은 관객이 예술작품을 통해 의미를 찾고, 자신만의 해석을 부여하는 것도 이곳에서 삶의 본질적인 답을 구하려는 본능적 충동에서 비롯된다
정의철 작가의 해체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찾으려 시도하고 그것을 만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즉 개성화과정이란 보편적이고 원형적인 미학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것은 과거에 개인적 과제로 진행되던 해체는 단위 사회 속에서도 나타나게 된다는 오늘의 상황이다. 사회가 그 구성원의 성장으로 내부적 변화를 필연적으로 겪게 된 것이다. 특히 모더니즘 전환기에 이러한 개인적 해체는 사회적 유기체로 구성된 한 단위 사회가 성장하기 위한 해체적 당면에 처하게 되고 한국사회도 타의적 해체와 파괴의 과정을 겪게 되는 이중적 해체에 직면한다.
한국사회는 60년 대와 70년 대 서구와 동양의 전통 문화와 직접적인 만남이 있었고, 수 천년 이어온 전통적 사회가 완전하게 붕괴되고 파괴되는 전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과정 속 그 현장에 몸을 담고 살았던 한국인들이 인지하지 못한 것은 그 변화의 중심에 당사자들이 비켜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비 상품과 서구문화, 정보 그 자체를 쉽게 인지할 수 없는 단지 집단욕망의 주체이었을 뿐이다. 한국인들은 마치 물 속에 있는 물고기들이 물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변화 속에서 그 변화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작가가 반드시 통과의례처럼 거쳐야만 하는 해체과정과 다시 몸을 중심으로 복원하는 것만이 탈구조시대 예술가의 생존을 위한 길이 되었다. 나를 통하여 세계를 깨닫고, 그 자각된 몸을 통하여 세계로들어서는 작업을 정의철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적 해체과정을 통해서 복원해야 할 새로운 자아란 과제다. 이것은 물론 작가에겐 개성화과정으로 표현된 자신 만의 조형이미지다. 바젤리쯔의 거꾸로 된 인물들과 프란시스 베이컨의 문질러진 얼굴, 또 정복수 작가의 절단된 신체와 그의 얼굴로 만날 수 있는 작가 만의 조형이미지 구축이란 과제가 남아 있다.
한편 예술가가 사회의 좌표나 어떤 이념을 제시해 줄 필요도 없고, 단지 있는 그대로를 정직하게 표현하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인류가 걸어오고 목격한 예술의 오랜 길은 보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 진술하고 기록(document)하는 길로 들어섰다. 이미 반세기이전에 카셀에서 미술제를 창설하며 카셀다큐멘타(documenta)’라는 명명을 한것이 바로 이런 필연적인 방향 전환을 예고한 것이었다.
현대예술가의 고민과 방황은 이것에서 더욱 한층 깊어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보고 느낀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깨달은 것을 이젠 예술이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까닭에 20세기 이후 화가들은 메니페스토(Manifesto)를 만들고 하나의 이념적 패거리를 형성하여들뢰즈가 제시한 하나의 고지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더욱 하나의 공동체 인식 안에서의‘분열된 개성화과정’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분열된 개성화과정’은 칼 융이 이미 제시한 전체적 공동체 안에서 이상적인 하나의 인격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오늘날 어떤 단위사회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각기 다른 종교적, 이념적, 사회적, 인식적으로 분리된 다른 사회가 존재한다. 들뢰즈는 이 분열된 개성화과정으로 형성된 사회를 천 개의 고지로 이미 제시했다. 결국 사회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 분열된 사회, 이미 탈구조화된 사회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과 같다.
그 분열된 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개별적 정체성을 통과의례처럼 거쳐야만 하는 것이 해체과정이다. 마치 일상에서 늘 하는 목욕을 위해 옷을 벗는 것처럼 해체과정이 거듭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피곤한 사회에 들어섰다. 그러므로 탈구조주의시대 예술가란 그 해체된 것들을 다시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복원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요구된 것이다.
나를 통하여 세계를 깨닫고 그 몸을 통하여 세계로 들어서는 작업
그러나 문제는 혼란스런 탈구조주의 시대에 들어서며, 들뢰즈가 비유한 플라톤의 이데아, 즉 한 개의 거대한 이데올로기로 상징된 산 밑에 모여살며 군집을 이루던 집단문화에서 일탈된 탈구조적사회, 천 개의 고지 속에 각 개인의 고지를 만들고 살아야 하는 힘든 과제 앞에 당면한 사실이다. 수 천년에서 수십년 등 오랜 타협과 투쟁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한 집단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을, 이젠 한 개인이 만들어 가며 살아야만 하는 힘든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당연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 이같은 과제를 회피하기 위해 탈구조적 사회로 변화된 현실을 외면하고 기존의 봉우리 밑에서 여전히 기생하고 있다.
예술가는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고지를 만드는 일을 회피할 수 없고, 또 피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개성화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차이를 생성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이 이데올로기를 갖기 위한 그 방법론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한반도엔 이 새로운 봉우리를 위한 기초가 이미 조성되어 있다. 일제 식민지 근대사의 불행과 한국전쟁을 통해 두 번의 파괴와 해체과정을 경험한 후, 다시 수많은 시민들의혁명과정을 통해 해체와 파괴를 경험하며 세운 고지다. 앞 글에서도 제시한 바와 같이 이후 한국현대사는 해체된 사회 틈으로 자연스럽게 동서융합의 기본고지가 형성되며 재구성 되는과정을 겪는다.
문제는 대다수의 시민들이 이 거대한 미래의 변화를 줄 고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는 동서문화 만남으로 전통이 파괴되고, 내부 사회구조가 분열되며 해체된다. 이같은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1993년 신자연주의미학이 출발했다. 이 미학운동은 동서문화를 통합한 한민족이 새롭게 새워야 할 고지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뿐만아니라 그 고지 안에서 다시 만들어야 할 마치 리좀의 뿌리가 뻗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것은 해체적과정 중에 만나는 문화적 충돌과 사적 경험으로 들어서는 길이고, 결국은 한 개의 미학적 봉우리를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 나를 자연스럽게 알고 인식하고 깨닫는 과정을 통하여 개성화과정으로 이행되는 속에 세계화로 들어서는 관문이기도 하다. 즉 독립적 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로 입문하게 되는 것이다.
정의철 작가는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그 문에 들어섰다. 그는 자신의 조형언어 변화에 적극적인 모색을 하며 한국전통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한국적 전통문화와 사상을 배경으로 선언된 신자연주의미학에 입문할 기회를 갖고 해체와 복원으로 이어지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더욱 분열된 자아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혼란속에서 찾은 미의식을 진솔하게 풀어놓고 있다.
정의철작가는 아스테이지 판에 얼굴을 그리는 작업으로 차이를 생성한다.(그림8) 그 얼굴은 이 시대 누구나 내면에 갖고 있는 분열되고 늘 분화될 수 밖에 없는 불확실한 얼굴이다. 작가는 그 얼굴에 다시 두텁게 붙인 듯한 색으로 마치 파편화된 살조각을 다시 붙이듯 그리는 작업으로 자신 만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붙여진 얼굴을 다시 뒤집어 캔버스에 붙여 마치 속얼굴들을 폭로하는 것 같은 효과를 연출한다. 재미있는 것은 관객은 그 전복된 얼굴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림 9,10)
작가가 스스로 해체와 복원을 파편처럼 물감을 뜯어 붙이기와 다시 뒤집어 붙이기로 자신의 조형세계로 환원하는 것은 온 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상처와 고통, 혼돈의 흔적들이다. 그는 실명된 한 쪽 눈으로 어둠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체험한 것을 맨 밑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을 겹쳐 놓는다. 그 만남의 충돌 현장은 ‘얼굴’로 드러난다. 사실 정의철작가의 이같은 얼굴로 표현된 만남의 충돌은 누구나 일상 속에서 하루에 몇 번씩 경험하는 것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기묘한 사건을 목격하거나, 이질적인 현장 속에 있음을 자각할 때, 혹은 이상한 일을 목격할 때 나타나는 표정의 낯설음이다. 그 낯설음은 대상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지만 대상을 통해 감정이입을 받은 당사자에게 나타나는 표정이기도 하다.
정의철 작가는 물론 필자 등 대부분 20세기후반을 전후로 태어난 모든 한국인은 사실 이러한 동서 융합문화의 무한조건 속에서 성장했다. 이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이성적으로 인지하기 전에 이미 몸으로 동서문화의 융합된 일상을 통해서 그것을 체득했다는 소중한 사실이다. 일년에 몇 번씩은 오백년 이상을 이어 온 유교식 제사를 지내고, 또 천년 이상의 문화흔적이 배인 불교 사찰 유적지로 소풍을 가고, 5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없는 고층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또 점심은 햄버거나 스파게티로 지역과 식문화의 경계를 넘고,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의 소식을 바로 접하며 시간과 지역의 경계가 무너진 일상을 누구나 갖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한국 대중가요를 들으며 영국의 철 지난 팝과 요즘 유행한 미국가수의 힙합을 동시에 비교하며 다양한 문화 속에 놓여 있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스며든 동서 복합문화 속에서 듣고 느끼고 배우며 성장한 것이다.
해체과정과 함께 다시 몸의 파편으로 새롭게 복원된 정의철작가의 조형이미지는 동서융합의 문화 속에서 자라고 있는 고지 중의 하나 임은 의심할 수 없다. 이제 정의철작가는 자신의 온전한 조형의지를 갖고 그것을 키워나가는 긴 도정에 들어서 있다.
작가노트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라는 명제에 우리는 별다른 의심 없이 수긍한다. 이는 대상을 인지할 때 일차적으로 시각을 통해 이미지를 수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인데, 시각의 용이한 접근성 때문에 대상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시각이미지라는 오인을 하기 쉽다. 시각은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감각이지만 그것에 대한 객관성은 담보할 수 없기에 지나친 이미지 정보는 우리의 주체적인 판단 과정에 혼동을 일으킨다. 이미지를 생성하는 근본적인 힘은 감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주체, 즉 자아에 있기 때문이다.
‘낯설다’작품은 주객이 전도된 시각과 주체에 대한 질의를 끌어낸다. 재현적인 이미지들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할수 없다고본다. 이미지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낯설다’초화상들은 정확한 윤곽선이 없는데 이는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에 따라 다영한 감정의 결로 느껴지기를 원함이다. 외형적으로 유사한 이미지를 경계하고 내면의눈,즉 정신세계에 집중하고자 한다.
‘낯설다‘는 캔퍼스에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필름지를 사이에 두고 두껍게 물감을 칠한후 그 물감을 떼어내어 프레임화한것이 최종작업이 된다. 이는 그림의 내외관계를 뒤집게 되고 겉이 아닌 속이 전면에 향하면서 예상치못한 이미지가 드러남을 유도하는 것이다.
피상적인 세계에서 진정한 자아이자 무의식으로 유도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표현적인 ‘껍데기’를 벗겨내고 그 속의 본질적인 ‘알맹이’만이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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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나는 더러 낯익은 누군가의 얼굴에서 미처 보지 못한 또 다른 얼굴을 심심찮게 발견한다. 얼굴만 보아서는 알 수 없다. 겉 모습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로 속을 알수 없듯이.............
사실 얼굴이 전부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얼굴만을(겉모습) 절대적으로 평가하면서, 오독하면서 산다. 얼굴이 한 개인의 모든 것을 대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얼굴은 시간이 지나고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변화한다. 이 세상에는 그 얼굴을 보는 무수한 관점과 시선들이 있다. 때로는 낯설다.
나 역시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나의 얼굴, 오로지 타인들의 눈에 걸려드는 얼굴. 그럴 때는 무척 낭패스럽다. 그런가하면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은 보여지는 모습뿐이지만 정작 그것으로는 타인을 알지 못한다.
바라보는 생각들은 마음속에 있더라..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인다..
선택은 관조를 통해 관조는 보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관조의 과정이 어쩌면 쾌의 결과는 아닐런지.....
정의철(Jeong, Eui Cheol)
배재대학교 미술학부(서양화) 졸업
배재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미술학(서양화) 졸업
러시아 이르쿠츠크 미술학교 수료
개인전
2017 낯설다 (대전 - 고트빈갤러리초대)
2016 낯설다 (대전 - 모리스갤러리)
2011 껍딱전 (대전 - 이공갤러리)
2007 껍딱전 (대전 - 성갤러리)
(부산 - SEE&SEA갤러리 기획초대)
(수원 - 대안공간 눈)
2004 껍딱전 (서울 - 관훈갤러리)
(광주 - 일곡갤러리 기획초대)
2003 정의철개인전 (러시아;이르쿠츠크 - B.C.Rogalya)
(대전 - 현대화랑)
2002 정의철개인전 (대전 - 현대화랑)
단체전
2018 2인초대전(김도연,정의철) (갤러리 쿱/서울)
창형전 (대전 근현대전시실/대전)
대전미술제 (예술가의집/대전)
대전의 기수전 (오원화랑/대전)
대전,내 삶에서 만들어진것 전(이공갤러리/대전)
집착전 (이미정갤러리/공주)
2017 NEXT CODE : 우리 앞의 생 (대전 시립미술관/대전)
상흔의 초상 (해움미술관/수원)
대전의 기수전 (오원화랑/대전)
HIGHSCHOOL DIRECTOR<관계대명사>展(대전엑스포시민광장 미디어큐브동/대전)
대전국제아트쇼 (대전무역전시관/대전)
2016 창원 아시아미술제 (성산아트홀/창원)
KIAF16 (코엑스/서울)
대전국제아트쇼 (대전무역전시관/대전)
A-AF 아트페어 (동대문DDP/서울)
미로회전 (예술가의집/대전)
2015 대전의 기수전 (오원화랑/대전)
아트스터디전 (갤러리 이즘/대전)
국제장애인인권전 (공평아트갤러리/서울)
2014 21국제미술협회전 (KBS대전/대전)
뉴델리아시안아트쇼 (All India Fine Arts & Crafts Society Gallery/인도)
2013 청년미술제 (갤러리M/대전)
2012 한국.독일.프랑스 국제미술교류전 (Wasserburg Rindern Kleve/독일)
대전,꿈꾸다 (이즘갤러리/대전)
한국의 현대미술전 (국립이즈미르박물관/터키)
2011 국제교류하모니전 (역삼문화센터 미술전시관/서울)
파리 국제 아트쇼 (17rue commines 75003 Paris France/프랑스파리)
2010 이르쿠츠크 아트갤러리디아스 초대전 (디아스갤러리/러시아 이르쿠츠크)
대전 아트페어 (대전갤러리/대전)
2006 중국국제아트페스티발 (위해시 국제전시센터/중국)
2005 CHINA ART EXPOSITION (China/Beijing)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광주시립미술관, ㈜골프존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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