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박정경 개인展 '밤의 숨 The Breath of Night' 

장르 : 대전 전시회 

기간 : 2016년 12월 29~2017년 1월 4일 

장소 : 이공갤러리 

관람시간 : 11:00~19:00 

관람료 : 무료 

문의처 : 042-242-2020 



박정경-발견 tonight. 종이위에 유채.2016




박정경-이상한 낮.모르는 밤9층.종이위에 유채.2016




살아있는 폐허


오랜 세월 서서히 이루어지는 자생적인 변화가 아니라, 어디에서인가의 결정에 의해 도시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곳에서는 구도심과 새로운 도심의 차이가 크다. 자연과의 게임보다는 인간과의 게임이 중요한 작은 땅덩이의 나라에서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개발이 항시적이다. 때로는 그 누구에도 도움이 안 되는 개발을 위한 개발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개발지상주의 국가 한국에는 구도심과 신도심의 명암이 갈리는 곳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지방의 군소도시에서 작업하고 있는 박정경의 작품에는 개발의 명암이 반영되어 있다. 신도심이 아직 자리를 잡지 않은 경우에는 구도심만큼이나 유령 같은 분위기가 있지만, 모두가 떠난, 또는 곧 떠날 구도심에 깔려 있는 정서는 더 을씨년스럽다. 그러나 예술은 그러한 삭막한 곳에서, 그러나 삶의 본 모습과는 더욱 가까운 곳에서 삶의 풍경을 읽어낸다. 예술적 아름다움은 가증스러운 꾸밈이 아니라,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의 진실과 관련된다.


질척한 모노톤의 작품은 지나간 흑백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우수가 서려 있으며, 지금 여기의 풍경은 저 멀리 사라지는 원근법을 따라 곧 사라질 것 같다. 다소간 급격한 원근법은 회화작업 전에 사진이라는 매개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드로잉에 바탕 하는 작업, 특히 작은 작업들이 집합된 장면들은 그 오래된 풍경들을 더욱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것으로 만든다.


발견은 혼자, 또는 누군가와의 동행이었으며, 작품에는 그 여정을 증거 하는 길, 특히 골목길들이 많이 등장한다. 풍경은 대부분 골목 이편에서 저편으로 다가가는 시점이다. 소실점의 끝은 매우 어둡고,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지도 불투명하다. 미지의 곳에 던져진 자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낡고 오래된 풍경을 갱신한다. 박정경은 군산의 본모습을 낮보다는 밤에서 더 많이 발견한다. 밤은 꿈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을 결속시킨다. 가령 작품 [군산항]에서 화면 왼쪽은 바다, 그 위의 검은 하늘, 그 옆의 불 꺼진 건물들의 조합은 불야성의 도시에 익숙한 시점에서 보면 어둠의 연속이다. 어둠은 시선을 빼앗고 있는 세속적 환영으로부터 우리를 떼어 놓음과 동시에,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과 집 등에 연속성을 부여한다. 계몽과 이성의 빛이 가물가물해진 곳에서 삶과 꿈이 구별되지 않는 풍경이 놓여있다.


빛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빛은 활성화된 도시가 그렇듯이 연속적이지 않다. 인적 없는 골목길을 지키고 있는 가로등은 부재의 자리를 더욱 강조할 뿐이다. 화면의 전경을 비추는 빛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퇴장한 연극무대의 조명을 연상시킨다. 동시에 그것은 비어있음의 충만함을 표현한다. 군산 이전에 있던 곳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전인구의 50% 이상이 몰려 살고 있다는 수도권 이외의 곳은 거의 비슷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도권은 방치되는 기간이 좀 짧은 반면 지방은 길다. 땅도 넓지 않은 나라에서 사람이 거의 살고 있지 않는 수준의 장기간의 방치가 일어나는 이유는 부동산 개발의 신화와 정책의 불확실성이 맞물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에 의해 이미 완성되어 있는 미래에 대한 각광이 지금 여기를 블랙홀로 만든다. 바깥의 존재인 예술가들은 누구도 자세히 살피지 않는 이러한 주변부에서 삶의 풍경을 발견한다. 그것들은 이미 지나갔기에 더 적나라한 풍경이다. 이 풍경은 현재진행형이기보다는 다소간 회고적이고 고고학적인 시선으로 포착된다.


여기에서 발견이란 언제나 재발견이다. 박정경의 작품의 경우 군산은 발견의, 청소년기에 10년을 보냈던 전주는 재발견의 장소다. 여기에서는 지각만큼이나 기억이 힘을 발휘한다. 작품 [멜랑콜리아]에는 빈 방과 카페 등 추억의 장소들과 거기에서 발견되는 부재의 흔적들이다. 작품 [중앙동 4가]에서 풍경은 전경부터 빛에 사라지려는 듯, 또는 지우개로 지워지려는 듯이 흐릿하다. 또 다른 [중앙동 4가]에서 건물로 추정되는 덩어리들이 도열은 질퍽한 질감으로 풍경의 여러 요소들을 감성으로 버무리는 특유의 필적이 있다. 차가웠던 장면은 예술적 열기로 인해 다시 뜨거워진다. 이 열기는 갈라진 것들을 붙여놓는다. 이 서로 다른 밀도와 명도로 얼룩진 덩어리들은 도시의 얼굴 뿐 아니라 작가의 감성을 드러낸다. 본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지 않은 낯선 풍경들에는 두려움과 황홀함이 있다. 작품 [중앙동 4가]에 나타나듯이 깊숙한 원근법에 전경은 환하고 원경은 어두운 방식은 군산의 풍경과 비슷하다.


그것은 두 장소를 보는 사람이 같으며 두 장소가 비슷하게 신/구도심의 명암을 공유하는 것과 관련된다. 드물게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 [가는 길]의 시점은 작가가 갔고, 관객도 그 동 선을 따라가게 하는 방향성이 있다. 그러나 자신을 포함한 친구들의 모습은 전경의 빈 바닥에서 둥 떠 있는 것이 마치 유령처럼 보인다. 유령의 거리를 유령들이 배회하는 것 같이 말이다. 경계를 넘는 존재인 유령은 시간이 잠시 멈춰버린 듯한 과도기의 시공간을 통과하는 중이다. [drawing 시간들]이라고 제목을 붙인 작은 드로잉들은 장소의 이모저모를 담은 것들을 모아 놓는다. 단편들은 마치 그때그때 다르게 떨어졌을 낙엽을 한데 쓸어 담은 듯 복잡하다. 거기에는 그 장소를 포괄할 수 있는 총체적인 시점이 없다. 다만 부분들의 집합이 있을 뿐이다. 대작이 아니라 부스러기의 모음 같은 그것들은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총체보다 집합은 보다 열려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박정경에게 군산은 확고한 대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자신이 서있는 곳을 중심으로 다시 그려져야 하는 지도처럼 나타난다.

풍경의 원근감은 있지만 투시적이지는 않다. 거기는 광학적 시점이 아니라, 온 몸으로 통과하면서 알아가야 하는 곳이다. 유기적 전체라고 할 수 있는 총체적 시점이 부재한 것은 작업실 전경을 표현한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품 [작업실 1]은 작업실의 여러 부분을 그려서 붙인 것이다. 매일 다른 시간에 그린 다른 공간들이라 차이가 있다. 그것은 매일 같은 대상을 그려도 조금씩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운데의 빈자리는 그 부분들을 보고 그렸을 작가의 자리일 것이다. 작품 [작업실 2]는 최소한의 관계성도 배제한 채 그려진 작업실의 여러 부분들이 거의 임의적으로 붙어있다. 빈곳도 있다. 공간체험인 지각과 마찬가지로 시간체험인 기억 역시 잃어버린 고리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빈 부분 때문에 퍼즐 맞추기는 더욱 역동적이다. 작가는 옴싹달싹 할 수 없는 재현의 결정성 대신에, 조합에 따라 다른 이야기로 펼쳐질 수 있는 부분들 간의 놀이를 제안한다.


뭉쳐있거나 비어있는 바깥풍경 역시 하나의 정조에 물들어 있지는 않다. 작품 속 군산의 구도심은 항구나 어시장 등, 예전의 활기가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폐허처럼 보인다. 분명 거기에도 아직 사람이 살고 있을 테지만, 어두운 모노톤의 풍경은 폐허 같은 면모를 강조한다. 지금 여기의 현실을 상대화시키는 폐허는 낭만이다. 그것은 생겨나는 모든 것은 스러진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이 생멸의 회로에 예술이나 예술가 또한 포함될 것이다. 그것이 박정경의 한 작품 제목처럼 ‘멜랑콜리아’를 낳게 할 것이다. 예술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히 소통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란 없다. 언어 역시 역사적이다. 낭만주의자들이 즐겨 묘사했듯이, 이때 문명과 역사는 자연화 된다. 붓터치가 역력히 남아있는 박정경의 풍경은 시간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시간성과 하나가된 몸의 현존을 강조한다. 듬성듬성 서 있는 나지막한 건물들은 잡풀과 뒤섞여 있으며, 건물들 간의 명백한 경계 또한 흐릿하다.


여기에 안개와 바람 같은 기상적 조건이 가세한다. 작가는 군산의 날씨가 변화무쌍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발견의 대상이었던 군산은 낯설지만도 않은 곳이었다. 여기저기에서의 데자뷰 현상은 지각과 기억을 동시에 활성화시킨다. 30대 중반인 작가는 원래 고향이 강원도 태백시였는데 이곳에서 산 10세까지 그 도시는 급격히 쇠락했다. 거기를 떠난 시점인 90년대 중반에 이미 도시는 비어가고 있었으며 전학 가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전주에서 10년을 살았고, 서울에서 10년을 산 후, 다시 전주-군산에 간 작가에게 유령도시의 그림자는 떠나질 않는다. 계속 지방의 군소도시에 살았던 것이 아니라, 대학을 포함한 학창시절을 보낸 곳은 서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녔던 미술 대학의 위치를 생각건대, (재)개발의 광풍은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가리지 않는다. 군산만큼이나 복잡했을 아현동의 골목길은 이제 점령군처럼 조여 오는 고층아파트에 지워져 버렸을 것이다.


여러 곳을 이주하며 살았던 작가의 이력은 낯섦에 익숙함이, 익숙함에 낯섦이 교차하게 한다. 특히 길은 여기와 저기, 지금과 그때를 이어준다. 길은 시간과 공간을 이어준다. 간만큼의 거리가 시간이며, 시간은 공간이동을 가능케 한다. 소실점 부근이 어둑한 길은 막다른 골목 같지만 계속 이어지는 구도심의 길을 암시한다. 그곳은 수직 수평의 좌표를 따라 투명하게 배열된 신도심의 길과 달리 미로처럼 이리저리 뚫려 있거나 막혀있으며, 처음 가본 이들은 거기에서 길을 잃을 법도 하다. 작가는 동네의 길을 중심으로 그리며, 작품 제목도 지명을 사용한다. ‘중앙동’처럼 역설적 느낌으로 다가오는 동네이름이 그대로 살려있다. 오래된 구멍가게에 남아있는, ‘근대’, ‘현대’라는 상호가 자아내는 느낌처럼, 특정 명명 행위에 남아있는 욕망이 있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거나 드문드문 있는 동네에서 지형지물은 그곳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기표가 된다.


박정경의 작품은 그러한 지형지물마저도 하나의 덩어리로 합쳐져 꿈틀거린다. 어둠이나 눈이 덮일 때 덩어리의 느낌은 더 강조된다. 각이 정확히 맞지 않는 삐뚤빼뚤한 건물의 도열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폐허는 살아있는 것이다. 이제는 인적이 드물어진 곳에서의 잊혀진 이야기들은 시인과의 협업으로 풀어냈다. 시인 임주아와 함께 한 프로젝트 이름은 ‘이상한 낮, 모르는 밤’이 었는데, 이 제목은 이 두 젊은 예술가들이 즐겨 쏘다녔던 장소의 특성을 잘 말해준다. ‘낡고 거대한 놀이공원’으로 간주된 군산은 그들에게 설렘을 야기하는 미지의 장소로 다가왔다. 부산한 삶의 거품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그 다음 작업을 하는 것은 예술이다. 예술은 그 다음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과도기에 존재한다. 다른 삶이 밀려오면 예술가는 다시 짐을 싸야할 것이다. 이러한 유목이 아니더라도, 원래 도시는 스펙터클하기 때문에 그자체가 탐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쇠락해 가고 있거나 폐허화 된 도시 역시 그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거기에는 현대성의 흔적이 있다. 당시에는 새로웠지만 지금을 그렇지 않은 상황은 지금 절대적 가치로 신봉 받는 새로움의 위상을 상대화시킨다. 반대로 그것은 망각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새롭게 보인다. ‘오래된 미래’라는 표현이 있듯이, 과거는 새로울 수 있고, 미리 가불해서 써버린 미래는 이미 고갈되었을 수 있다.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낭비해 버린 자연이나 문화는 희귀한 것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지금 각광받는 새로움은 여기가 아닌 신도시에 있을 테지만, 그것이 낡아지는 속도는 더 빠를 것이다. 소비사회는 어느 순간 소비를 위한 소비 또한 생산했다. 시간도 공간도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국내외 관광의 일반화로 가속화된 체험의 소비 또한 일그러진 변화를 야기했다. 유명하다고 해서 가보면 이미 익숙한 소비사회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는 식이다. 아방가르드의 신화가 생생했던 근대에 미래는 예술가의 몫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예술가는 흥행적 요소가 사그라져 버린 곳에서 새로운 자원을 발굴한다. 상업주의나 대중의 관심을 벗어난 장소는 예술가에게 또 다른 기회의 땅이 된다. 넝마주의자처럼 버려진 것, 낡은 사물의 가능성을 발견한 초현실주의는 20세기 최초의 시적인 고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흔적은 남아 있으나 체취는 사라져 버린 마을의 풍경은 깨어나길 기다리는 유적지 같다. 인적 없는 골목 양쪽으로 늘어선 야트막한 건물들의 불 꺼진 창들은 그것들이 켜져서 따스한 기운을 뿜어내면서 활발하게 움직였을 때를 떠오르게 할 것이다. 지금은 상상력이 필요한 장면의 재구성은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살아있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보고보이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도시의 활발함은 불 꺼진 창의 움푹 파인 구멍으로 대치되었다. 작가는 사람 사는 기운이 빠져나간 자리들에서 풍겨 나오는 초현실적 분위기를 잡아낸다. 낡은 폐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물들이 방치되어 있곤 한다.


그러나 쓸모없는 것들은 기능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그 장소가 탈영토화되었듯이 말이다. 언젠가 누군가의 욕망을 채워주었던 상품은 유행이 지났지만, 이제 또 다른 호기심을 자아내는 사물이 되었다. 미로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도시 전체의 배치자체가 신비롭다. 쇠락한 도시를 쏘다니면서 뜻밖의 만남을 추구했던 초현실주의자들은 ‘어제 이해했던 장소를 내일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루이 아라공)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물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순간에 사물들을 재인식’(발터 벤야민)된다. 먼저 살다간 이들이 남긴 흔적을 탐사하는 작가의 시점은 고고학적이다. 집과 건물이 늘어섰던 풍경에서 지금도 살아있는 것은 작가도 그곳을 통과했을 골목이었을 것이다. 번쩍거리는 새것만이 파노라마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박정경의 작품은 오래된 도시를 탐사했던 발터 벤야민의 고고학적 시선을 떠오르게 한다.


그램 질로크는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에서 벤야민의 저작들은 체계적이거나 점증적이지 않고 열광적이며 반복적이라고 본다. 그의 저작에는 진전이 아니라 고심의 흔적이 있다. 도시 풍경은 같은 장소, 인물, 대상으로 회귀한다. 하지만 매번 방향과 관점은 다르다. 벤야민의 도시/텍스트 속에는 현대 대도시의 미로에서처럼 끊임없는 운동은 있지만 진보는 없다. '미로에는 중심이 없기에 도시 발견과 탐험을 상상하는 사람은 중앙에 도달할 수 없고, 끝없는 순환적 여행으로 오랜 기간 동안 같은 길을 되돌아갈 뿐이다'(엘리자베스 윌슨) 박정경에게 ‘거대한 놀이동산’으로 간주된 옛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다소간 두려우면서도 즐거운 체험이었다. 익숙한 곳이 낯설게 되는 그 어디라도 미로는 발견될 것이다. 전체를 가늠할 수 없는 미로의 체험에서 중요한 것은 ‘삶의 지혜이지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자크 아탈리). 근대의 투명성이 빛을 잃은 지금 미로가 회귀하고 있다.


한데 엉켜 시꺼먼 숯 덩어리 같은 박정경의 구 도시 풍경은 수직 상승하는 유리 상자들의 도시와 반대되는 이미지다. 이 시커먼 풍경은 이제 대지와 하나가 되려한다. 직선으로 뻗어나가지 않는 원근법적 공간의 불투명성은 맹목적이면서도 매혹적이다. 자크 아탈리는 [미로]에서 중국어에서는 미로를 미(迷)와 궁(宮)이라는 두 개의 낱말을 결합하여 나타낸다고 인용한다. 여기에서 ‘迷’는 ‘길을 잃다, 헤매다, 혼잡스러운, 어수선한, 홀리는, 마술에 걸린, 정신없이 사랑하다, 또는 정열에 사로잡히다’ 등의 뜻을 지닌다. ‘宮’은 사원이나 궁전 또는 자궁을 의미한다. 자크 아탈리는 길을 잃는다는 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뒤로 물러나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이다. 작가는 유목민처럼 같은 길을 매번 다르게 간다. 그렇게 갈 수 있지 못하다면 창작 공간 여인숙에서의 작업은 그토록 생산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과 망각은 상보적이다.


박정경의 작품은 잊혀진 것들 가운데 기억된 것이 끝없이 회귀하는 장이다. 기억만큼이나 지각은 어둠 속에서 불현 듯 다가오는 단편들로 나타난다. 단편들은 맞춰져야할 퍼즐이 된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유목적 주체]에서 유목민적 의식은 푸코가 말한 반(反)기억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유목민은 맞딱뜨린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기 위한 재현 대신에, 다가오는 것들을 향유할 뿐이다. 박정경은 구글 어스 식의 전능한 시점 대신에 그때그때의 지표를 해석하며 나아간다. 또는 다른 길을 비슷하게 간다. 한군데에서 그린 풍경이 다른 곳과 유사하다. 군산과 전주, 아마도 그녀가 어릴 때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태백까지 그 골목길, 그 잡풀들, 그 가로등이 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전성기를 보내다가 쇠락한 도시들은 잠시 이곳에 있지만, 그곳에 완전히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의 시점이 덧씌워지면 새롭게 풀어헤쳐진다. 그리고 곧이어 다시 짜여 진다.    

              

글쓴이_이선영(미술평론가)




박정경-이상한 낮--모르는 밤-군산항.종이위에 유채.2016




박정경-이상한 낮-모르는밤-산책.종이위에 유채.2016




A Breathing Ruin


A wide gap exists between an old town center and a newly developed urban centers when the planning decisions are imposed by an exterior party at a fast pace, compared to when things are let to evolve in the due course of time. In a small land, most of the urban planning only chase after short term gains, rather than respecting the nature. The players are set among men and men only. At times, development project that brings no benefit to any stakeholder takes place. In Korea where real estate capitalism triumphs over everything, many places feature a stark contrast between old town areas and newly develop blocks. Jungkyung Park’s work reflect this contrast in her work who is currently working at a residency in a small city in the province. New blocks that have not been settled may give a sense of hauntedness, but so does the void of an abandoned old city. However, art gives a human feel to the landscape of such deserted place. Beauty conferred by art has a lot to do with the bare truth itself, not the embellished.

The watercolor-like monotone work induces a sentimentality one experiences from looking at a black and white photograph. This landscape before us looks as if it is about to vanish along the vanishing points of the perspective. It alludes to the photographic medium before transferring the work on painterly establishment on a steep perspectives. The old landscapes reproduced by works that are based on drawings, and also especially those forming a collage from small works, have a transient nature. Jungkyung Park’s exhibition at the Art & Culture Space 'Yeoinsuk', subtitled ‘Here At Gunsan Now’, shows work that includes Gunsan where her studio is based and areas surrounding Gunsan such as Jeonju. Art programs taking place on the outskirt record the landscape of the area through the eyes of the artist, pulling in the possibility of regeneration. Ever since the artist relocated her studio from Jeonju, Gunsan has been her primary source for discovery. For a young artist leading a nomadic life having to constantly relocating work space, the place the artist comes to reside is always a place of new wonders. And it is through her work that she shares her discovery with others.

Her journey of discovery is a lonesome job, or at times it is accompanied by others, and the work often features small alleys, which are paths of the proof of the discovery. Most of the landscape contains views of approaching the alleys from different angle. The vanishing point is very dark and obscured, nobody knowing where it leads. The view of the young curious mind thrown onto the unknown land renews the old and faded landscape. Jungkyung Park is able to better find the true essence of Gunsan at night than during the day. The night binds everything that has been apart like in a dream. In [Gunsan Harbor], the left side is occupied by sea, the upper part is dominated by the dark sky, and building with lights turned off creates a continuation of darkness. Darkness deprives the viewer of the vision, separating us from secular fantasies. At the same time, it creates a continuity between the residential buildings and the land it is rooted in. At a place where the light of enlightenment and reason becomes fuzzy, a landscape that does not distinguish between life and dream unravels.

It is not that light is completely absent. Like the way things are in lively the cities, light is not of a continuous nature. The streetlamp that guards the unattended alleys only further emphasizes the absence. The light that illuminates the scenery reminds the viewer of an empty stage where all the actors have exited out. At the same time, it expresses the exuberance of the void. Place previous to Gunsan is no different either. It must be noted that other than the metropolitan area where more than half of the nation’s population is residing, all other places are pretty much the same. Whereas places are not left unattended for long in metropolitan area, those in provincial area go through a protracted period of unuse. Real estate investment tendencies and uncertainties in the policy sector fuels this seemingly impossible phenomenon in a small crowded nation. The spotlights on the future ready-made by the capitalistic minds create a black hole at this place at this moment. Artists wandering on the outside discover the life in the landscape of the outskirt that nobody has bothered to take interest in. The landscape is ever more candid because they are a place of the past. With nothing going on in the present, it is captured by a retrospective and archeological point of view.

Here, the discovery is always a rediscovery. For Jungkyung Park, Gunsan is a place for a new discovery, and Jeonju is a place for a rediscovery as she has spent ten years of her youth there. Here perception plays as much force as memory does. [Melancholia] features traces of absence found in places of memories such as an empty room and cafes. Scenery in [Joongang 4 ga] is blurry as if the light is about to vanish with an eraser wiping it clean. In another work titled [Joongang 4 ga], lumps that appear as buildings line up, creating a unique brush mark of a rich scenery soaking in sentimentality. A once cold scene turns into fervor by the artistic heat. This heat fuses things that have been set apart. Spotted masses of differing density and light intensity reveal not only the face of the city but also the artist’s emotional richness. The strange scenery wiped out of its original shape creates a fear and ecstasy. Like in the work [Joongang 4 ga], the combination of deep perspective, bright foreground, and dark method resembles the cityscape of Gunsan.

This relates to sharing the light contrast of the old and new town, bearing similarity between two places, like the way a single person is beholding two different places. People occasionally visiting the site in [On the Way], their sight coincide with that of the artist who is following the same movement as the viewer. However, the gang of her friends and herself looks as if they are hovering in empty floor like ghosts. They are like ghosts wandering the haunted streets. Ghosts which are not subject to boundaries go to and fro between time and space that seem to have come to a pause at a transitional moment. The work titled [drawing Moments] is a collection of drawings of various places. The little fragments forma  complex picture like a fallen foliage. There does not exist an overarching point of view that unifies all the places represented. It is just a set of collected pieces. It is hard to see them as a shortfall – they are crumbs not a big masterpiece. They are more like an open concept than a closed entity of the whole. For the artist, Gunsan is not a fixed subject, but an open map that can be redrawn again and again depending on where she is standing.

The perspectives in the landscape exists but they are not penetrative. They are not optical perspectives but a place that is to be experienced physically. Same goes for the work portraying her work studio. An organic whole exists replacing the overarching whole. [Studio 1] is a piece with several little part of the studio has been sewn together. As the pieces were drawn at different time, there exists little differences between the parts. It points that there is bound to be little differences even if one is drawing the same subject everyday. The unoccupied space in the middle is probably where the artist set to draw. [Studio 2] restrains the minimal relationship between spaces with parts attached to one another in a random manner. There are also empty spots. Memory which is also a product of visual experience can also have a missing link like the way spacial perception works. Such empty parts renders the game of puzzle more dynamic. The artist replaces the firm nature of reproduction with a flexible play where combination made from different parts can have a room for different possibilities.

The outside scenery which is empty or congregated is also not confined to a single tone. The old town in Gunsan appears as a ruin where only the traces of harbors and fish markets that have once been lively in the past remain. There probably still exist human dwellings, but the dark monotone emphasizes the derelict air of an abandoned place. Ruins are romantic in relativity with today’s reality here. It points to the truth that everything that happens comes to an end. In this cycle of life and death, art and artists are not exempt. This is what gave birth to Jungkyung Park’s ‘Melancholia’. Art is not permanent. There is no such thing as a common tongue that can be used for communication forever. Language is also of historic nature. As the romanticist often like to put it, in such moment civilization and history become part of nature. Jungkyung Park’s landscape emphasizes the passage of time through the obvious brush marks. And it underlines the current existence of the body that has become one with the temporality of time. The buildings spaced out from each other mixes with weeds growing about, blurring the clear boundary between the establishment and the surrounding vegetation.

Fogs and winds add climatic conditions here. The artist remarks that the whether in Gunsan changes constantly. However, Gunsan, which has been her subject of discovery, has not always been such a strange place. The various deja vu experience mobilize perception and memory. The artist who is in her 30’s spend her childhood in her hometown, Taebaek, Gangwon province, until the age of ten. The city of Taebaek has been rapidly depopulated ever since. By mid-1990s, the place was already almost empty, with many kids in school transferring to other places. Then she lived in Jeonju for ten years, then another ten years in Seoul, and she has been residing between Jeonju and Gunsan as an artist. These cities have never left her like ghosts cities hovering around. It is not that she has spent her whole life in small cities and towns. She spent her youth, including college days, in Seoul. However, real estate boom does not spare any places, including her art college area. Narrow streets of Ahyun-dong are now wiped out and the place is dominated by large high-rising apartment complexes.

Artist’s history of having lived in various place while growing up leaves a crossing of familiarity and strangeness in her work. Paths in her work connect here and there, now and the past. They link the time and space. Covered distances represent time, and time allows movement between places. The areas around the vanishing point is dark like a dead end, but it implies an alley leading a continuous space to old town. Unlike the newly developed real estate project organized in horizontal and vertical axis, they are woven like a maze, with various openings in unplanned manner. Many are bound to get lost in that space. The artist makes the work based on the streets of the neighborhood, titling the work the place it was inspired from. Like ‘Joongang-dong’, the name of the street oozes sense of irony while making lively representation. Like the way old small brick and mortar shops take the business title using adjectives such as ‘Modern’, or ‘Contemporary’, the act of giving something a title reflects human desire. In a relatively unpopulated areas, these structures act as landmarks that help navigation in that territory.  

Jungkyung Park’s work combine these landmark-like structures into one wriggling mass. When such masses are covered in darkness or snow, their force become amplified. Line of buildings which are at odds with each other seem to portray a wiggling movement. Ruins are of living property. The forgotten stories in an unvisited place unravel themselves with the help of the poet. Park collaborated with a poet Jooa Lim on a project named ‘Strange Day, Unknown Night’. The title of the project shows a place frequently visited by the two artists with its site-specificity. Gunsan which is considered as ‘a giant old theme park’ approaches them as an unknown place that brings excitement. In a place where the bubbles of human life has withdrawn, the stage is now set for art. Art exists at a transitional moment allowing the next stage to come to life. When another stage for life is to come, artist must pack his belonging and leave. Even if it was not for this nomadic life style, cities are of spectacle nature, validating themselves as a subject for an adventure itself.

Traces always exist in cities left abandoned or those on the decline. Particularly there exists traces of contemporaneity. Things that were at the time novel but are now outdated renders the status of what we praise as novel now of having a relative position. On the contrary, they appear novel as we have forgotten how the fad fades away. As the expression, ‘an old future’, portrays, the past can be novel, and a future that has been paid upfront can be already exhausted. Natural resources and culture that were taken for granted will reappear with scarcity value. What is receiving the spotlight now may be absent here, with new towns being brightly lit, but the pace of their depreciation will be so fast. Consumerist society produced commodities for the act of consumption for the sake of consumption. Time and place have also become an object for consumption. In addition, tourism in Korea and abroad accelerated the experience of consumption bringing about a distorted change. One may visit a popular touristic destination, but there only aways a replicated pattern of consumption. In the heyday of the avant-garde, future belonged to the artists, but not anymore.

Artists seek to find new source in a place where the bubbles of the boom have been burst. Places where commercialism can no longer thrive offers a land of opportunity for artists. An ideologist insisting on wearing only rags, surrealism of the 20th century belongs to the poetic archaeologists who find new possibilities in old artefacts. The scenes of the vanished town where traces of human occupation remain but their scent has been evaporated are like an old relic awaiting its moment to come to life. In an unfrequented alleys of unlit buildings, the dark windows are awaiting for their masters to light them bright. It reminds one of the time when these places were bustling with liveliness. Places that require imagination to fill in were probably very lively only a few decades ago. The liveliness of the city created in the relationship of seeing and being shown is matched by the big empty sunken hole. The artist captures the surrealist atmosphere from the places that have once been lively but are now vacated like a void. A deserted place is filled with objects that cannot be understood right away.

However, useless things are those that have been liberated from its designated function. The place has been deterritorialized. The once much sought-after commodities of the moving fashion now attract curious minds. The entire network of streets of the city itself is fascinating. Surrealists who pursued unexpected encounters on their journey crossing declined cities stated, ‘Places that yesterday were incomprehensible, and that tomorrow will never know.’(Louis Aragon). However, ‘objects come to be re-perceived at the moment they cease to exist’(Walter Benjamin). The artist holds an archaeological view, examining the traces left the past occupants. House and buildings are still breathing in the abandoned scenery and the artist probably strolled about the alleys. It is not that only the extravagant get to create a panorama. Jungkyung Park’s wo가 reminds the viewer of Walter Benjamin’s archaeological view exploring old cities.

Graeme Gilloch’s [Walter Benjamin and Metropolis] expresses that Benjamin’s writings are of passionate and repetitive nature rather than being of that of systematic and cumulative. His writings are not of progressive nature but are traces of deep agonies. Cityscape returns to same place, people, and subject. However, everytime the point of view and direction changes. In Benjamin’s city/text, big cities of today go through endless movements as if in a maze, but there lacks progress. ‘A maze does not have a center. Hence person navigating the city for discovery and exploration can never reach the center. He would only continue an endless circular journey for protracted period time, retracing the same pathways. (Elizabeth Wilson).’ For Jungkyung Park, getting lost in an old town considered as a ‘giant theme park’ was a source of both fear and amusement. There’s bound to be a maze everywhere – even the most familiar place can all the sudden become a strange site. What is important in this experience of maze where the whole cannot be fathomed is that ‘wisdom of life not the absolute truth. (Jacques Attali).’ The maze is returning, as the transparency of the modernity has been lost now.

Jungkyung Park’s image of the old city pitch dark as black coals forms a contrast with the images of glass towers reaching for the sky. This dark landscape is now trying to become one with the ground. The opaqueness of the space created by perspectives without the use of straight lines lures the viewer without any sense of purpose. Jacques Attali, in his book [Maze], cites that the word maze in Chinese, miro, is a combination of two characters, ‘mi(迷)’ and ‘gung(宮)’. ‘Mi’ means ‘to be lost, to wander around, disarrayed, bewitched, put under spell, be madly in love, or in feverish passion.’ ‘Gung’ means a temple, palace, or a womb. Jacque Attali does not see getting lost in the way as a failure. It is an opportunity to reflect on oneself taking a step behind from where one used to stand. An artist always takes a different turn like a nomadic. It is this nomadic tendency that led the productive residency at the Art & Culture Space 'Yeoinsuk'. Memory and oblivion complement each other.

Jungkyung Park’s work is a platform of the forgotten where the memory endlessly returns to. As much as the memory does, so does the event of perception loom about as little fragments. These fragments are puzzle pieces which are to be fit into one picture. In [Nomadic Subjects], Rosi Braidotti expounds that nomadic consciousness is similar to Foucault’s anti-memory. The nomadic do not reproduce the subject for the sake of possessing it – they relish what lays before them. Instead of taking the omnipotent view such as that of the Google Earth, Jungkyung Park takes one set of coordinates at a time for interpretation. She moves onto different path in similar way. A landscape she portrayed from one sppot bears resemblance with other spots. Gunsan and Jeonju, had she started drawing from early age, the landscape probably would have included the city of Taebaek and its allies, the little weeds and grasses, and the standing light. The cities that were in its heyday in similar period which then waned made a short temporary stay, but this phenomenon adds an outsider point of view to the scene. And then this is sewed back to the fabric.


Sunyoung Lee(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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