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갤러리메르헨, 용선 개인전 
유형 : 대전전시회 
날짜 : 2023년 5월 18일~5월 24일 
관람시간 : 10:00~18:00 
장소 : 갤러리메르헨, 대전 유성구 대덕대로 556번길87 (구)모리스 갤러리 
문의처 : 갤러리메르헨 042-867-7009 

 

 

 

 

 

 

시간과 기억의 레이어
- 용선 작가의 뜨개질과 바느질

이천 년대 초반 용선 작가는 이후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시리즈인 펜 뜨개질과 나뭇잎 작업을 시작했다. 이상적인 무언가를 애써 구하기보다는 주변 환경에서 착상을 얻는 그만의 방식대로 작업은 출발하였다. 온기를 간직한 것처럼 보이는 스웨터와 니트류에 시선이 닿았고 곁에 펜과 크레용 따위가 있었다. 자연에 둘러싸인 작업실 주변을 걸으며 떨어진 나뭇잎들을 주웠다. 스웨터나 니트류의 올을 종이에 펜으로 엮어나갔고 수집한 나뭇잎은 헤진 부분을 바느질했다. 조각과 설치, 영상 등 다른 작업을 하면서도 두 시리즈는 하나의 지류처럼 이어져 작업실과 전시장에 섞여 들었다. 그리고 이천이십삼 년 오 월, 작가는 오래 이어온 두 시리즈를 엮어 닮은 면모를 읽어내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Knitting & Sewing’이다.

응축된 시간 속의 반복
용선 작가의 펜 뜨개질 시리즈는 보는 사람을 그것만의 분위기 속에 위치시킨다.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거나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감상자를 둘러싼 온도와 습도를 재설정한다. 비가 올 예정이거나 이미 내린 뒤의 축축함 속으로, 십 도 안팎의 아주 서늘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어떤 날로 이끈다. 바닥에 펼쳐두어 주름이 생긴 스웨터나 니트류의 형태와 낮은 채도의 색감이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다.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나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작가가 그린 옷의 질감이다. 스웨터와 니트의 올을 펜으로 살려냈다는 걸 파악하는 순간 평면은 돌연 입체감을 띤다. 작가가 드로잉으로서 한 벌의 스웨터나 니트를 짰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작품에 깃든 시간성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시간의 흐름을 직접 체험하게 하거나 서사를 풀어나가지 않지만 펜 뜨개질 시리즈는 다른 의미로서 시간에 관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펜으로 한 올 한 올 부드럽고 촘촘한 선을 늘어뜨리고 엮었다. “그리다 보면 어느새 정성이 실리며 서서히 형상이 드러나고 모양이 갖춰진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펜 뜨개질은 반복 작업을 전제해야 하며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작업 과정으로서의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는 점에서 나뭇잎 작업은 펜 뜨개질과 맥락을 같이한다. ‘잎’이나 ‘식물’ 혹은 ‘반 식물’이란 제목이 붙은 작품을 만들기까지는 작가의 말대로 상당한 “시간과 품”이 든다. 찢어지거나 말라서 해진 나뭇잎을 줍는 것을 시작으로 그것을 그늘에 말린 뒤 찢긴 부분을 꿰매거나 잎에서 잎맥을 분리해 낸다. 상당한 주의와 수고,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시간과 품”이 든다는 말은 여타의 작품에도 들어맞지 않는가. 작가의 펜 뜨개질과 나뭇잎 작업에서의 “시간과 품”은 어쩌면 수련에 가까운 행위를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행위는 어느 순간 목적이나 의도, 의미를 잊게 하며 행위 자체로만 남아 다른 층위의 시간을 불러일으킨다.

이면(裏面)을 기억하기
‘기억으로서의 시간’은 작가가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 옷과 나뭇잎이 실재하는 사물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작가는 옷, 그것도 사용감이 있는 스웨터와 니트류를 그리며 생을 다하고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바느질한다. 작가가 발견하기 전에도 옷가지와 나뭇잎들은 실용 혹은 무위로서 각각 시간을 보냈다. 시간의 선형적 흐름에 따라 순서를 따져본다면 옷과 나뭇잎이 지나온 기억으로서의 시간이 작업의 시간에 비해 앞선다.
작업은 기억으로서의 시간을 전제하며 그것을 거슬러 좇는 과정으로서 의미를 띤다. 작가는 펜 뜨개질에 관해 “한 올 한 올 새겨지는 시간 속에는 기억이 발아하고 상념이 자란다. 몸의 기억을 품은 옷. 옷이 짜이는 시간 속에는 몸의 기억이 직조되고 기록되며 환기되어 머문다.”라고 설명한다.
기억으로서의 시간을 반추하는 것은 한편 본래 모습 혹은 온전함에 관한 탐구이기도 하다. 작가는 예리하고 섬세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나뭇잎의 원래 모습을 재구성해 내는데, 이러한 과정을 그는 “‘온전함’에 대한 ‘기억’을 좇는 것”이며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아름다움의 기억, 생(生)의 흔적, 피의 온도와 같은 식물 본래의 모양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업의 시간. 기억으로서의 시간. 그리고 세 번째 층위의 시간은 ‘감상자의 시간’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작가가 꿰맨 한 장의 낙엽에서 감상자는 작업의 시간을 추측할 수 있으며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빛을 받아 스스로 양분을 만드는 나뭇잎을, 기억으로서의 시간을 발견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다른 나뭇잎과 부딪쳐 소릴 냈던 때를, 비를 맞아 잎사귀 위에 둥근 물방울을 간직했던 때를 떠올려본다. 그렇게 “‘온전함’에 대한 ‘기억’을 좇는” 작가의 여정을 그대로 뒤따른다. 감상자의 시간이 시작된다.

단 하나의 온전한 나뭇잎
기억은 작품을 읽어내는 실마리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기억으로서의 시간을 반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누구와도 기억의 총체를 공유하지 못한다. 말과 글, 그림, 사진과 영상으로 애써 재현해보았자 기억 그대로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은 불가하다. 게다가 “몸의 기억”이라면 재현과 이식은 더 어려워진다. 옷이 품은 몸의 기억은 많은 부분 후각과 촉각의 경험으로 구성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적이고 내밀하다. 이때, 작품 앞에서 감상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을 기억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다.
오직 감상자 자신에게 속한 몸의 기억은 다른 기억을 연속해서 불러온다. 저들끼리 합쳐지며 최초의 모습과는 다른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감상의 과정은 ‘pen knitting half’라는 제목의 연작들과 빗대어 볼 수 있다. 작가는 두 벌의 옷을 반쪽씩 합쳐 하나로 잇거나 소매끼리 봉합한다. 연결된 부분이 꼭 들어맞지 않고 전체의 길이가 서로 다르기도 한 점이 눈에 띈다.
기왕 기억의 주체가 된 바에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볼 수도 있다. 생을 다한 나뭇잎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분리의 순간을 서늘하게 감각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작가가 삶과 죽음의 테마를 다루어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감상 또한 과하지 않게 여겨진다.
기억하지 못할 뿐 사람이라면 누구나 떨어짐을 경험하며 세상으로 나온다. 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이 죽음을 향해 간다면,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며 생을 시작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삶의 목적지가 어떻게든 죽음일 수밖에 없다는 걸 상기하면 나뭇잎과 사람이 다르게 경험하는 분리는 무한한 고리를 이루게 된다. 한때의 온전함과 아름다움에 머물러보았자 결국 소멸하는 무상함이다.
덧없음 속에서, 작가의 식물 작업이 시작되는 순간을 되짚어보는 것이 위로가 된다. 땅에 떨어진 많은 나뭇잎 가운데 작가는 단 하나를 선택해 집어 들었다. 크기나 색, 잎맥의 모양, 찢어지거나 해진 정도가 같은 나뭇잎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하나의 나뭇잎만이 그 자체의 형식과 내용을 이룬다. 어쩌면 그것이 ‘온전함’일지도 모르겠다.
그간 작가는 나뭇잎에서 시작된 작품을 주로 자연현상을 연출한 영상이나 자연물(사물) 설치와 함께 배치했다. 자연법칙에 따라 발생하고 소멸하지만 거대한 자연 속에서 우리는 단 하나이며 한 번뿐이기에 온전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최근 작가는 작업에 관한 네 번째 층위의 시간을 조정했다. 이미 작품이 된 나뭇잎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서지는 등의 변화를 보여 레진을 씌운 것이다. 그렇게 나뭇잎은 미래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화석이 되었다.


이천이십삼 년 오 월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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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전공연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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