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and the Beginning(끝과 시작) 展 블룸즈버리, 대전예술가의집
전시회 2021. 5. 12. 22:10 |
전시명 : The Endand the Beginning(끝과 시작) 展 블룸즈버리
유형 : 대전전시
날짜 : 2021년 5월 25일~5월 30일
관람시간 : 10:00~18:00, 전시마감일 : 10:00~14:00
장소 : 대전예술가의집
문의처 : 010-4401-2912
기타 : 작가와의 대화 : 2021.05.29. PM 3:00
전시 서문
사진과 텍스트
끝과 시작
The Endand the Beginning
영혼에 관한 몇마디
A Little Bit About the Soul
이정희(전시기획 및 평론)
2021년 블룸즈버리 전시는 ‘사진과 텍스트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사진의 가능성은 무엇인가?’에서 시작된다. 텍스트로 선택한 쉼보르스카의 시집 <끝과 시작>은 170여 편의 시가 실려있다. 그녀는 30년전 노벨상 수상식에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는 모든 지식은 결국 생존에 필요한 열정을 잃게 되고 결국 소멸되고 만다.”고 언급했다. ‘끝없는 질문 던지기’는 사진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진실이다. 그녀가 일상에서 건져올린 비범한 시어와 절제된 표현은 사진작업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동반자가 되었다. 인간내면에 잠재된 욕망과 폭력을 휘두르는 체제에 대한 고발, 일상의 단면에 숨어있는 그로테스크한 순간, 관습에 대한 뒤집기, 생명 중심의 사유는 날카로운 풍자와 자유분방한 시어 속에서 매우 섬세하고도 풍부한 이미지를 품어낸다.
모더니즘의 반발로 시작된 1960년대 개념미술은 사진과 언어성을 강조한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으로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 이번 블룸즈버리의 시도도 개념미술 맥락에서 시도된 소피 칼의 작업과 비슷하다. 소피칼은 현대사진이 왜 개념미술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었다면 블룸즈버리 전시는 그러한 맥락에서도 자유롭게 벗어나 사진과 텍스트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내는 일종의 변주곡이다. 시와 사진이 만나는 <읽는 사진>의 형식을 통해 새로운 사진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이다. 텍스트의 문학적인 요소가 사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사진과 텍스트>의 새로운 형식이 작가가 의도한 주제를 어떻게 보여주며 어떻게 확장되어 나가는가에 대한 시도이다.
김영순# 영혼에 관한 몇 마디 100cmx150cm pigment print
김영순
영혼에 관한 몇마디
이번 블룸즈버리 그룹전 테마는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고 이미지화하는 작업이다. 쉼보르스카는 아주 늦은 나이까지 많은 이에게 열정과 예술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시인이다. 나는 이미 2019년 블룸즈버리 독서클럽에서 그녀의 에세이와 시가 담긴 <읽거나 말거나>를 읽었기 때문에 구면이다. 이번 전시를 위한 택스트는 <영혼에 관한 몇마디>로 정했다. 나의 영원한 착한 소년- 97세의 아픈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읽은 시들은 지친 마음을 치유해주기도 했다. 작업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셀프포트레이트와 기존 사진을 꼴라쥬하는 방법을 이용하기로 했다. 시의 이미지에 맞는 영화포스터를 패러디하려고 뉴욕에 사는 아들에게 연락을 하고, 영화포스터에서도 아이디어를 얻기로 했다.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을 소개받았다. 50대의 그여인이나 80대의 나나 삶의 고즈넉함은 똑같다. 포스터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금강변에 서 연출사진을 찍었다. 사진작업의 과정은 내가 살아있다는 새로운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김성순# 차이와 반복 70cmX120cm pigment print
김성순
차이와 반복
-다양성의 아름다움 반복의 즐거움-
봄의 풀밭은 작고 귀여운 꽃들. 같은 듯 다른 초록빛으로 가득 찬 식물들의 축제장이다.
1번 사진은 각기 다른 풀밭 속 식물들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품어 주며 살아가는 방식을 닮고 싶어 봄까치꽃으로 모두가 다 다른 정원을 만들었다. 얼핏 보면 모두 같아 보이지만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근대 이래 인간 사회의 큰 문제점은 ‘다름이 곧 틀림이다'에 기반한 객관주의였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는 언제나 폭력을 몰고 온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2번 사진은 제비꽃이 있는 풀밭을 복제하여 대칭해 보았다. 동일하게 복제한 사진들이 놀라운 패턴을 창조한다. 반복과 반복이 계속되면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는 사라지고 위계가 사라진 평등한 세계가 된다. 반복되며 나타나는 기표 놀이는 어느새 신비로움으로 변하여 관람자에게 보물찾기 같은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서동훈# 알레그로 마 논트로포 40cmX60cm pigment print
서동훈
알레그로 마 논트로포 (빠르게 그러나 적당히)
오늘도 수많은 생명들이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지고
수많은 식물들이 밟히고 뽑히고 잘려나가며
크고 작은 동식물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이들의 아픔과 슬픔 모든 감성들은 버림받은 채
짧은 생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모든 생명은 죽음이 끝이 아니다.
끝과 시작,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 소멸과 생성. 어느 것이 앞에 와도
둘은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못하는 이들의 죽음은 나의 상처에
닿아 아프고 고통스럽다. 다시 시작할수 있을까. 시작이 시작된다면.
알레그로 마 논트로포, 때로는 빠르게 그러나 적당하게......
이정희# 경이로운 어떤 풍경 100cmx150cm pigment print
이정희
Timeless Space
쉼보르스카의 시 <경이로움>에 기대어 “시간”과 “역사”와 “시점”과 “사건‘을 결합시켜보았다. 피카소는 파편화된 얼굴, 몽타주 기법으로 일련의 초상화를 그렸고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사건과 신화, 노래가 퍼즐처럼 맞춰져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도 심리적 순간의 조각들이 한 지면 위에서 동시에 몽타주된 작품들이다. 일리야 레핀이 그린 <1901년 5월 7일 국가의회 100주년 기념회의>의 황제 니콜라이 2세와 60여 명의 정치인들의 엄숙한 표정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1901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초상화로 옮겨 그린 레핀과 그의 제자인 쿠스토디예프, 쿨라코프 3인의 시점, 201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미술관 관광객들의 시점,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내 카메라 시점은 2021년 사진을 바라보는 관객들 앞에서 다시 몽타주된다.
노일란# 카오스의 리듬 60cmX90cm pigment print
노일란
카오스의 리듬
나는 숲을 더 좋아한다. 가만히 다가가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헝클어진 마른 나무덩쿨에 빛이 와글와글한 순간이 좋다. 나뭇가지여! 죽었는가 살았는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순환하는 그 무엇에 꽂혀 걸음이 더디다. 생명의 이면을 간직한 소멸의 아름다움 속에는 질서와 혼돈이 뒤엉켜있다. 이 정적이고도 사색적인 풍경 속에서 카오스의 리듬을 찾아보았다. 각기 다른 오브제는 세 개의 과녁을 뚫고 지나가는 활시위처럼 하나의 주제어를 말하고자 한다. 생명의 혼돈과 방황과 부활에 관하여.
박건태# 물결 230cmX150cm pigment print
박건태
물의 꿈
느리게 흐르는 강은 두려움 없는 어머니 같기도 하고 걱정없는 어린 누이 같다. 지난해 물난리로 뿌리뽑힌 나무들이 허연 쓰레기를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강가에서 자라온 나는 수많은 꿈을 꾸었다. 그러나 이제 닿을 수 없는 것들, 건널 수 없는 것들,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며 나의 지나가버린 시간들도 흘러보냈다. 고요하게 굽이치는 물결 소리는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의 노래 같다. 고요한 물, 깊은 물, 성난 물, 너그러운 물. 바슐라르는 <물과 꿈>에서 물이 흐르는 모습을 수십 가지 이야기한다. 강마다 흐르는 시간마다 휘돌아가는 물길마다 천개의 물은 천개의 얼굴을 가진다. 망원렌즈에 강의 얼굴인 물결을 잡아보았다. 근원으로서의 물, 물의 내면을 그려내고 싶다.
오상기# 너겁꽃들의 정원1 30cmx30cm pigment print
오상기
너겁꽃의 정원
큰물이 쓸고 간 강이나 하천을 보면 할퀴고 패이고 쓰러지고 너겁들이 나무가지에 얼기설기 달라붙어 낯설게 느껴지고 주술적이며 유령이 나올듯 섬뜩한 마음까지 든다. 결국 이 너겁들은 바다로 흘러가 바다를 힘들게 하고 그 영향이 인류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주술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너겁들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현대 사진의 아우라는 주술적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추한 사물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쉼브르스카의 시〝우화”처럼 바다 어디를 가나 너겁들은 존재하고 또 그것들은 파도에 부서지고 찢기고 결국에는 가루로 변신하여 너겁 본래의 실체는 찾아볼 수 없고, 물고기 입을 통해 인간들의 입으로 돌아온다는 진실을 공유하고자 한다.
황선애# 어쩌면 이 모든 일이 40cmX40cm pigment print
황선애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집을 지었다. 건축가의 설계대로 집이 지어진다. 목수와 페인트 공은 벽에 그들의 겉옷을 걸고 비닐로 덮었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을 환히 밝히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한다. 그리고 건축주의 의도를 파악하여 전기코드를 어디에 달지 재단한다. "여기가 좋을까요", "바닥에서 30센티 정도 띄는 것은 어떨까요?"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비스와봐 쉼보르스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해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이곳이,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어떠한 변화가, 정해진 계획에 따라 스스로 생겨나고 스스로 움직일지도 모른다고. 집이 설계자의 도면대로 지어지듯 우리 인생도 이해 못할 어떤 힘에 의해 움직이는 걸까
이경환# 끝과 시작 100cmx150cm, pigment print
이경환
끝과 시작
제2차 세계대전은 산업화시대의 전쟁 양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량생산된 무기는 대량파괴와 대량살상의 대참사로 나타나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비 오듯 쏟아지는 폭탄들은 생활 터전을 초토화하였고 소이탄의 뜨거운 화염은 모든 생명을 불태웠으며, 유대인 수용소 소각로의 불꽃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으로 우리 모두에게 각인되었다. 폴란드에서 이 비극을 직접 겪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그녀의 시를 통해 도저히 문학 작품으로 활자화할 수 없는 야만적인 현실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절망감, 그리고 인류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진 데 대한 상실감을 나타내었으며,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도 누군가는 다시 일어나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발생한 테러를 소재로 쓴 시를 통해서도 테러와 전쟁에 대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잠재된 공포심과 두려움을 일깨우고 있다.
이금자# 나에게 던진 질문 90cmX60cm pigment print
이금자
나에게 던진 질문
’미소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3번째 나에 대한 페르소나 작업이다. 내안의 ’나‘와 사회적 ’나‘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물어본다. 붉은 장미처럼 열정에 찬 인생, 보랏빛 도라지꽃처럼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으로 세상을 보듬는 생이 되고 싶다. 나에게 사진이란 무엇일까? 블룸즈버리는 나에게 무엇인가.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으며 아름다운 우정의 미학을 되짚어본다.
이계열# 물고기 60cmX40cm pigment print
이계열
가장 이상한 세 단어
쉼보르스카의 시 <가장 이상한 세 단어>는 존재 그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인 본성과 인위적인 형식에 불과한 언어를 혼동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삶과 죽음은 시간이 만들어내는 단어의 구별일뿐 본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 이미지에서 ‘시간’을 담아보았다. 말라버린 식물은 죽어있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다만 고통을 견딘 시간이 형상화되어 표현해보았다. 포도 이미지에서는 무엇인가를 소진하고 다시 갈망하듯 앙상히 마른 가지가 과실 쪽으로 향하는데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세 번째 사진 금붕어는 허버트 리스트의 작품을 재해석해 시간의 중첩을 담았다. 같은 금붕어를 다른 시간에 촬영해 한 장으로 만들어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는 이미지이다. <가장 이상한 세 단어>의 첫 소절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를 이미지화한 작업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과거의 별들을 지금의 별로 인식하는 것처럼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이어지면서 중첩되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전진표# 실존에 대한 자각 80cmX120cm pigment print
전진표
실존에 대한 자각
평생토록 노동에 시달린 광부의 흔적이 망부석처럼 전신주를 바라보고 있다. 여인의 얼굴 뒤에 보이는 산의 능선은 인간의 옆모습과 닮아 있다. 실존주의에 가까운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쉼보르스카’는 <두 번은 없다>에서 인간을 ‘투명한 물방울’에 비교한다. 거대한 세상 속에서 인간은 한 줌의 티끌처럼 미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중요한 건 이 세상 어디에도 나와 똑같은 존재는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사라지는 추억들, 꿈이 불에 타고 있다. 이것은 꿈일 수도 있고 꿈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실존에 대한 자각을 사진으로 표현해 보고자 한다.
최재중# untitled4 60cmx90cm pigment print
최재중
무제 untitled
평범한 기적 하나. 4월 봄밤에 머리 위에 뜬 달과 검은 하늘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비롭다. 어떤 법칙이 우리를 만나게 했는가? 기억은 어디에서 오는가? 꿈이 깃든 곳은 어디인가? 흑백으로 변환시키니 이미지의 점과 점이 하나의 선을 만들고, 선과 선이 면을 만들었다. 색채를 제거하여 선과 면이 만들어내는 형태를 단순화했다. 게슈탈트 인지는 심리학 원리의 기초다. 게쉬탈트 법칙에 의해 우리의 눈은 각각의 선과 형태보다는 전체적인 형상을 바라보게 된다. 신지학자이자 조형사진가 마이너 화이트의 사진처럼 점과 선과 면이 이루는 형태를 통해 내면을 담고자 했다. 흑백의 선과 면은 3차원의 사물을 2차원의 평면 세계로 변형시켜 심리적 선을 만든다. 흑백의 심리적 선이 만들어낸 형상은 일종의 기표로 미끄러져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2차원 평면 세계에서 4차원 상상의 세계로 건너가는 즐거운 변주다.
현대사진가회 블룸즈버리 그룹전
참여작가
이정희(전시기획), 이경환, 박건태, 전진표, 서동훈, 김성순, 김영순, 노일란, 이금자, 오상기. 황성애, 이계열, 최재중
‘블룸즈버리’에 대하여
현대사진 작가회는 이정희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전문사진작가 모임으로 매달 문학과 철학 역사적 담론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을 기반으로 사진주제를 탐색하고 분기별로 미술관 및 사진전 투어를 떠난다.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 북촌과 인사동 전시장 관람,부산, 광주, 대구, 청주 비엔날레는 물론, 경주, 지리산 함양지역 문화유산 답사, 담양, 전주, 원주 뮤지엄 갤러리, 파주 출판도시와 헤이리예술인 마을 공간 탐험, 영월 정선의 아트마인, 기억의 장소 남이섬과순천문학관과 동해, 남해여행을 통해 사진적 주제를 탐색해왔다. 워크샵의 경우, 각자의 작업발표, 토론을 통해서 사진작업을 의논한다. 이정희 교수를 비롯하여 최재중, 서동훈, 이경환, 오상기 회원의 개인전이 모리스갤러리와 이공갤러리에서 있었고, 박건태회장의 개인전이 준비 중이다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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